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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고구려史 지키기’ 찬물 끼얹은 장관

입력 | 2004-01-08 18:45:00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 및 관광정책을 총괄하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한 것은 비록 외교적 마찰을 고려했다고 하더라도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이 장관의 발언은 그동안 학계 언론계 및 네티즌을 중심으로 전개돼 온 ‘고구려역사 지키기’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다. 취임 1년이 다 돼 가는 장관으로서 아직도 자신을 한 나라의 국무위원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이 장관은 또 “고구려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움직임과 이 문제를 연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으나 학계는 “이는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정부의 일관된 전략 아래 이뤄진 것으로 그것을 별개로 보는 것 자체가 중국의 노림수”라고 반박한다. 우리는 학계의 견해가 옳다고 본다.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 사회과학원은 사실상 정부기관이다. 이를 감안해 고건 국무총리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민관합동의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설립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국회의원들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따라서 이 장관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은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고구려역사 왜곡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의 경솔한 언행은 국익과 외교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장관은 이번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더 이상 장관으로서의 입장과 자신의 개인적 소신을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나라의 주권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 조상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빼앗기는 장관이 돼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