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자연과학]'자연의 유일한 실수, 남자'…약한자여, 그대는 남자

입력 | 2004-01-09 17:38:00

생물학자인 스티브 존스는 “남성은 스스로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치명적 결함 때문에 다양한 유전자 전파 전략을 구사해 왔다”고 설명한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다비드’.동아일보 자료사진


◇자연의 유일한 실수, 남자 /스티브 존스 지음 이충호 옮김/370쪽 1만3000원 예지

대학 때였나, 난 화가 나 있었다. 당시 나는 교양과목으로 여성학을, 전공과목으로 생태학을 듣고 있었으며 양쪽에 나타나는 여성의 위치 격차에 분노를 느끼는 중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어떤 종의 유지와 존속은 먹이의 양, 날씨, 전염병, 생식 가능한 암컷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 수컷들은 대부분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암컷에 매달리게 되고, 암컷들은 유전자를 선별하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는 이 권력 상태가 부조리하게 뒤집혀진 것으로 보였다. 분노를 잠재운 것은 한 선배의 충고였다.

“남성들이 권력을 얻으려고 애쓰는 건 존재에 대한 불안 때문이야. 여성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지만 생명을 창조하지 못하는 남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물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권력이든 역사든 다른 것들을 창조하고 쟁취하는 원동력이 된 거야.”

몇 년 후 스티브 존스의 이 책을 접하면서 난 대학 때 알 수 없던 내 분노를 잠재우고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선배를 떠올렸다. 존스는 스스로도 남성이면서 자신 안에 숨은 남성성의 존재가 지금껏 왜곡되어 왔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하고 그 왜곡된 진실을 생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따져든다.

먼 옛날 생명체가 성(性)을 나눠 서로의 유전자를 섞기 시작한 순간 남성과 여성은 전혀 다른 생존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남성은 스스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핸디캡(이건 생명체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다)의 위치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기 위한 생존전략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생식 세포 수준에서는 더 많은 양의 정자를 더 작고 빠르게 만들어서 많이 퍼뜨리는 방법을, 개체의 수준에서는 좀더 강한 근육과 공격적인 성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여성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개발해 왔다. 그러기에 사회의 주도권은 남성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런 생물학적 바탕을 기본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남성이라는 존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한다. 또 과거와는 다르게 여성의 권리가 높아지는 사회 속에서 남성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자연의 유일한 실수’라는 제목은 다소 번역가의 재치의 산물이지만 (원제‘Y:The descend of Men’보다 훨씬 과격하다) 생물학적인 권력이 사회 구조 속에서 역전되어 나타난 모순을 잘 드러내 준다.

이은희 ‘과학 읽어주는 여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