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윤기 지음/268쪽 1만2000원 작가정신
싫어하는 음식을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는 일은 고역이다. 싫어하는 책을 읽혀야 하는 것도 못지않게 괴롭다. 어느 교과에서나 고전(古典) 독서는 중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고전 읽기는 ‘당위’와 ‘당의정(糖衣錠)’ 사이를 헤매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들로서는 재미는 없지만 꼭 읽어야 하기에 볼 뿐이거나, 요약된 읽을거리로 대충 때우는 식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교사들에게 고전이 고통스러운 화두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독서지도의 기초는 읽히려 하지 말고 읽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다. 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전의 감동과 혜안을 학생들에게 주고 싶다면 강렬한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훌륭한 지침을 주는 책이다.
신화는 요새 청소년들이 아주 좋아하는 이야깃거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신화를 서구 문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라는 측면에서 다룬다. 그는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요소를 끄집어내어 의미를 설명한다. 백화점에 걸린 리본 모양의 장식 속에서는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Cornucopia)’에 얽힌 이야기를, 군의관 옷깃에 달린 뱀과 막대기 장식에서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의 설화를 찾아내는 식이다.
모르면 지나쳐버릴 것들이지만 알고 나면 서구 문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문화소(文化素)들이다.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나 괴테의 ‘파우스트’ 등의 고전을 섬세히 읽은 학생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도 왜 이런 아이콘(icon)들이 나오는지를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이윤기는 고전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이 깊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느끼게 해 준다.
이론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구체적인 일상에서 출발해 추상적인 판단과 사유로 나아가라는 독서교육의 지침은 이 책이 지향하는 ‘신화 거꾸로 읽기’ 속에 잘 구현되어 있다. 고전 때문에 고전(苦戰)해 본 교사라면 이 책을 통해 필요한 조언과 충고를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