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서는 세계화가 필연적 흐름이라며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구조조정을 한다고 분주하고, 또 한편에서는 민족국가 단위로 살아가는 게 현실이라며 국익을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2003년부터 역사귀속 문제를 두고 중국과 논란을 빚고 있는 고구려사 문제나 최근 우정사업본부의 독도우표 발행을 계기로 다시 불거진 독도 영유권에 관해서는 한중일 어디에서도 글로벌스탠더드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독도’ 뒤에 일본제국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국가주의적 향수가 깔려 있다면, ‘고구려사’ 뒤에는 개혁개방의 확산에 따라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소수민족 문제와 국경분쟁을 우려하는 중국의 신(新)중화주의가 있다.
사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그리고 옛 영광과 고토(故土)의 회복을 꿈꾸는 마음으로 친다면야 우리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독도나 고구려사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최근 대응에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대해 가고 있는 한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신중화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그리고 한국의 민족주의가 부딪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리란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한국인들은 민족국가의 국민인 동시에 세계시민으로 균형감을 갖고 살아가는 중요한 체험을 하고 있다. 이라크전 파병이 국익을 위해 유익하냐를 놓고 정부와 국회가 논의하고 있을 때, 시민들은 그 파병이 세계평화와 이라크인들을 위해 옳으냐를 논의했다. 세계시민사회 차원의 논의와 국민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병행되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왜곡에 흔들리지 않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혀 세계에 알리는 일은 그런 뜻에서도 중요하다. 이 일은 ‘세계시민사회’ 차원에서 역사와 진실의 편에 서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사회 내에도 그간 민족주의, 국가주의로 인해 왜곡된 일들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가면서 중국과 일본에도 똑같이 국가주의적 왜곡에 대한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이 일은 동북아에서 한국이 21세기의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공자의 가르침이나 “너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칸트의 명제도 사실상 그 뜻은 별다른 게 아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