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 추씨 댁에
김해 김씨 며느리 들어왔는데
시아버님 말끝에
늘 토를 달아
“쌀 한 말 여와라” 하면
“두 말 져오지요” 이런 식이라
화가 난 시아버지 어느 날
“니가 매를 들어 니 종아리 쳐봐라”
하니
“내 참 더러운 매 맞는다”며
제 종아리 치는 그 며느리
“보자 보자 하니 거 참 요망스럽다”
시아버님 불호령에
“요임금 망해야
순임금이 나지요”
또 다시 토를 달고
종종걸음 내빼며 뒤돌아보는 눈길
얼마나 그윽한지
반듯한 가르마며
오늘 따라 눈썹은 왜 또 저리 고운고
괘씸한 우리 며늘아기
-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창작과비
평사) 중에서
껄껄. 추 영감, 공연한 며느리 자랑 그만 하고 술 한 잔 받으시게. 김해 김씨면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후손 아닌가. 반상(班常) 무너진 지 오래지만 자존심 콧대 왜 아니 없겠나. 쌀 한 말 여오라는데 두 말 져오겠다니 힘 좋고 배포 있구먼. 까닭 없이 노한 시아버지 ‘입품’에 내 종아리 내가 치는 ‘매품’이 그 아니 더럽겠나. 흥, 차마 체면에 며느리 매질은 못하겠다? 꽁하지 않고 되받으니 맺힌 데 없고, 요임금 망하고 순임금 난 거 아니 역사도 밝구먼. 그윽한 눈빛 반듯한 가르마라, 글쎄 자네 말하는 품이 며느리 미운 게 아니란께. 난 이만 가볼라네. 저기 ‘괘씸한 며늘아기’ 저녁상 차려 오누만. 이런, 싸르락 싸르락 털신에 소복이 이밥이 쌓였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