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새해엔 경제 좀 살펴주시지요.
“경제 때문에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맞습니다, 맞고요…. 불안한 경제 때문에 얼마나 신경을 쓰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으니, 올해는 경제를 더 챙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국민은 참여정부가 경제보다는 정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연히 청와대 게시판에 소개된 대통령님의 어록을 보니, 53개의 말씀 중 경제현안에 직접 관련된 내용은 불과 몇 개 안 되더군요. 이런 통계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국민은 정치보다 경제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합니다. ‘이태백’과 ‘사오정’으로 가슴 앓는 국민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기업들도 '못해 먹을 지경' ▼
정부는 이미 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났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청년실업은 날로 증가하고, 고용감축과 구조조정도 끊이지 않습니다. 50∼60군데 원서를 내놓고도 오라는 곳이 없어 취업정보실을 두드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올해는 5∼6%의 성장이 가능하다지만, 그래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작년 초에도 모두 5%나 성장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2.9%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오히려 4만개나 줄어, 처음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등장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새해엔들 어떻게 큰 기대를 걸 수 있겠습니까.
경제의 어려움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되고 있어서 미래마저 밝지 않습니다. 설비투자는 줄고, 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전문인력을 공급해야 할 교육의 경쟁력도 날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 5년 후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물론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묘약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장 투자가 늘지 않으니 어떻게 고용이 창출되겠습니까. 우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직접 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는 크게 줄고, 국내 기업도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얄팍한 이기심과 기업윤리를 탓하기도 하지만, 국내의 투자여건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고임금과 노사갈등에 시달리며 각종 정부규제에다 정치권의 오염물까지 뒤집어쓰고 교도소 담장을 오락가락한다면, 누가 감히 이 땅에 투자를 감행하겠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반(反)기업(가) 정서가 심각하고, 가진 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능력과 효율보다 형평과 평준화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투자 마인드와 경쟁력이 살아나겠습니까. 기업도 ‘못해 먹을 지경’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기업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투자처가 인접해 있다면 어떻게 ‘애국심’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애국심으로 버틴다 해도 경쟁력이 약화돼 곧 부실화되고 말 것입니다.
국민은 비록 정치적 인기가 떨어져도 경제논리로 갈등을 조정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정치개혁만큼 중요한 국사가 없겠지만 서민들에겐 경제처럼 절실한 현안도 없습니다. 정치개혁을 이룬다고 경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투자 없인 일자리 안생겨 ▼
일자리는 정부의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업인들도 자주 만나 격려와 토론을 하며 투자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정치자금 수사도 조속히 정리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신념도 보여줘야 합니다. 노사관계도 글로벌 표준에 맞게 제도화하고 법치국가의 위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정치의 논리로는 경제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관료의 행정경험만으로 ‘잃어버린 1년의 실패’를 극복할 수도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고언을 폭넓게 수용해 시장을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지금 경제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내일은 너무 늦어버릴 것입니다. 투자가 없는 경제의 미래는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정갑영 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