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세종로 인&아웃’을 매주 월요일자에 게재합니다. 이 코너는 국정 운영의 중심지인 세종로 1번지 청와대와 77-6번지 정부중앙청사에서 벌어지는 각종 화제성 뉴스를 생생히 전달할 것입니다. 독자들이 최근 공직자 사회의 내부 기류와 풍향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성골이 몰락하고, 진골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서기 654년 김춘추(金春秋)가 첫 진골 출신 임금으로 추대되면서 성골 시대가 막을 내린 신라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청와대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고락을 함께해 온 순수혈통의 성골들이 2002년 대선 과정에서 합류한 진골로 대체되는 물갈이를 겪고 있다.
이른바 ‘우(右)광재 좌(左)희정’으로 불리는 이광재(李光宰)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安熙正·구속) 열린우리당 충남 창준위원장 등 최측근그룹이 노 대통령의 주변을 떠나면서 그 자리를 ‘진골’그룹이 채우고 있다.
진골로 꼽히는 대표적인 인사는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우리당 공보실장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김현미(金賢美) 전 정무2비서관과 지난해 말 비서관으로 승진한 안연길(安然吉) 춘추관장 등도 같은 범주다.
DJ정부 시절 청와대와 민주당에 몸담아 뛰었던 이들은 현 정부 출범 초 성골들에게 물먹고 이런저런 서러움을 겪었다.
이 수석은 일찌감치 수석 물망에 올랐지만 지난해 8월까지는 정책기획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으로 떠돌다가 뒤늦게 지금 자리에 안착했다.
김 전 비서관 역시 청와대 대변인 물망에 올랐으나, 여지없이 헛물을 켜야 했다. 김 전 비서관은 DJ 곁을 단 하루도 떠나지 않았던 박선숙(朴仙淑) 전 공보수석비서관처럼 ‘노무현의 박선숙이 돼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성골들의 위세에 치여 ‘내 혈통이 이럴진대, 과연 제2의 박선숙이 될 수 있을까’라고 회의하다가 꿈을 접었다.
현재 남은 성골은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과 여택수(呂澤壽) 제1부속실 행정관 정도. 성골의 수장이던 이 전 실장은 총선 출마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지만, 사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처지다.
성골은 아니지만 1등 개국공신이었던 양길승(梁吉承)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은 청주 술자리 향응파문이 불거진 이후 전남 강진군의 한 산사에 은둔한 채 매일 참회의 108배를 올리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은 “얼마 전 대통령을 만났더니 ‘(구속된) 희정이는 얼굴 보기 어렵게 됐고, 그나마 있던 광재도 나가버리고, 뜻을 모았던 동지들이 이제는 다 떠났다. 요즘은 그냥 택수하고만 이야기한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프로야구 해태 감독 시절 김응룡 감독이 선동렬, 이종범 선수를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고 털어놓았던 심경과 노 대통령의 심경이 닮아있을 듯싶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