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의 고구려 유적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민수씨가 아차산 정상의 고구려 제4보루성에서 보호막이 벗겨져 방치돼 있는 유적을 가리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구리=이재명기자
“복원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발굴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10일 오전 서울 광진구와 중랑구, 경기 구리시에 둘러싸인 아차산을 찾은 향토사학자 김민수(金玟秀·56)씨는 점차 훼손되고 있는 문화재 발굴 현장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남한에서 고구려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된 아차산은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료의 현장.
그러나 아차산은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고구려의 유적지’라는 말이 무색했다.
아차산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구리시는 서울대 발굴조사단과 함께 4년 동안 아차산 일대에서 고구려의 보루성(堡壘城) 15개와 철기 및 토기 등 고구려 유물 1500여점을 발굴했다.
보루성은 큰 성을 방어하기 위해 주변에 쌓은 조그마한 성으로 고구려 보루들은 4세기 후반∼6세기 중반에 걸친 고구려 남진(南進)정책의 상징적 유물이다.
특히 아차산은 남한에서 유일하게 신라와 백제의 유물이 거의 섞여 나오지 않은 순수한 고구려 유적지여서 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아차산 등산로에선 지금도 고구려의 유물로 추정되는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의 파편과 석곽묘(돌로 외관을 만든 묘)의 흔적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89년 이 유적지들을 처음 발견하고 발굴 작업에도 참여했던 김씨는 현재 일반 등산객들과 함께 격주로 아차산 유적답사에 나서고 있으나 이때마다 분통이 터진다고 한다.
아차산 등산로를 따라 이어지는 3개의 보루성 가운데 제1, 제2보루성에는 아예 안내표지판조차 없어 김씨의 설명을 듣지 않고는 유적지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울타리 등 기본 보호시설도 없어 등산객들이 보루성의 주춧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 아차산 정상(280여m)에 있는 제4보루성에 설치된 유일한 안내표지판도 이물질이 묻어 있어 글씨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등 관리가 부실했다. 이 보루성은 인근 보루성의 지휘본부로 다른 보루성에 비해 규모가 2, 3배 크다. 그러나
발굴 당시 유구(遺構·유적지의 구조를 알아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유물)를 보호하기 위해 각 돌에 씌운 비닐은 현재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주요 유구 옆에 등산객을 위한 벤치를 설치해 문화재 훼손을 부추기고 있었다.
지난해 봄에는 아차산 홍련봉 남(南)보루성에 있던 돌확(성문을 여닫기 위해 우묵하게 판 돌)이 사라지기도 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아차산 등산로에 있는 보루성이 광진구와 구리시의 경계에 있어 책임소재를 가리기가 쉽지는 않다”면서도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 문화재부터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리시는 2000년 보루성을 복원하고 아차산 10만여평에 광개토대왕 광장과 역사박물관 등을 갖춘 고구려 유적공원을 조성하려 했으나 2002년 시장이 바뀐 이후 사업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구리시 관계자는 “올해 2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일부 훼손된 유적을 복원하고 안내문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지방자치단체 차원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복원과 보존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차산 유적 훼손 사실이 알려지자 구리·남양주 시민모임은 최근 ‘고구려 역사 바로알기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이를 위한 고구려역사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구리=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