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처럼 풀풀 날리던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해 쏟아진 12일 오후. 서울 영동시장 골목 안 소박한 일식카페에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는 카페 한편에 핑크색 티에 물 빠진 청바지 차림의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 제작비를 들인 전쟁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에서 주역을 맡은 원빈(27). 그는 눈에 대한 추억으로 말문을 열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한번 눈이 오면 허리까지 와서 학교에 못 간 적도 많았어요. 이글루를 지어 그 안에 들어가 놀았던 기억도 나요."
따끈한 어묵국물을 사이에 놓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드라마 '가을 동화'(2001)의 재벌 2세와 '킬러들의 수다'(2001)에서의 막내 킬러 등 그가 맡았던 배역과 실제 모습이 잘 겹쳐지지 않았다. 시종일관 나직한 목소리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에게서 '꽃미남' '미소년'의 호칭에서 전해지는 나약하고 여린 이미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예전부터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하고 심지가 단단한 청년이었다. 끼가 넘쳐흐르는 타고난 광대 보다,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는 배우였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10개월
이 영화에서 원빈의 역할은 가족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막내아들 진석. 형 진태(장동건)와 함께 강제징집되면서 역사의 수렁에 빠져든 그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가는 형과 갈등을 겪으며 성장해간다.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어요. 촬영기간만 10개월. 촬영 자체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총제작비 170억원, 총 엑스트라 2만5000여명, 군복 1만9000벌 등. '태극기… '는 물량면에서 다른 영화 서너편 찍을 만큼이 들어갔지만 그건 배우들의 공력도 마찬가지였다. 전투신 찍을 때면 여기저기서 폭발물의 섬광이 번쩍이고, 볶는 듯한 총소리에 비행기 굉음까지 귀청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수많은 인원과 장치가 동원되니 한 가지만 어긋나도 번번이 NG가 난다.
"가도 가도 영화의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으니까 괴로웠죠. 집중력은 떨어지고. 게다가 진석 캐릭터는 소리 지르고 울고 형과 싸우는 등 감정신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치열하게 감정을 되살려야 했으니. 그래도 힘든 작업을 통해 제가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얻고 발전했으리라고 믿어요."
●어느 것도 쉽게 된 것은 없었다
물론 스스로 선택했던 '몸 고생 마음 고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이었죠. 꼭 전쟁영화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진석을 통해 꽃미남이 아닌 배우로 자리매김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고요."
사람들은 성공한 모습만 기억한다. 95년 케이블 TV로 데뷔한 뒤 스타가 되기까지 그에게도 시련의 나날이 있었다. 그래도 버텼다. 인정받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자존심도 세우고 싶었다. 무엇보다 TV에 나왔다고 인사하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 부모님을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 쉽게 됐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4년 동안 힘들게 보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마음속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절대 안 잊어버려요."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원빈은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고 낯가림 많은 배우로 유명하다.
"성격이 내성적이긴 해요. 그런 성격 때문에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란 직업에 더 마음이 끌려요. 남들 앞에서 하고 싶은 것 못하고 가슴에만 담아둔 것을 카메라 앞에서는 죄다 쏟아낼 수 있으니까."
사람도 영화도 진지한 걸 좋아한다.
"이 영화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정 많고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 가족을 다룬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평생 연기를 할 거라고 말했다. 왠지 그의 말에선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이라는 신인들의 상투적인 답변과 다른,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게 바로 배우 원빈의 힘이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