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FM ‘김장훈의 뮤직쇼’를 진행하는 가수 김장훈. 새빨갛게 물들인 헤어 스타일이 그의 열정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그는 “일이 없을 때는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무미건조하게 보낸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KBS
“아무리 방송이라도, ‘열나 짱나’를 ‘몹시 속상해’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새해 첫날부터 KBS 2FM(89.1MHz) ‘김장훈의 뮤직쇼’(오후 2시)를 진행하는 가수 김장훈(36). 그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 기자 간담회에서 “이런 자리는 쑥스러운데…”라며 말문을 열더니, 별로 쑥스러운 기색없이 곧장 이야기를 쏟아냈다.
“제가 지금 ‘국어’에 굶주려 있거든요.”
그는 미국 샌터모니커 칼리지에서 9개월간 공연 연출을 공부하고 지난해 12월 귀국했다. 라디오 제의를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 그는 조건을 달았다.
“제발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말하게 하지는 말라고요. ‘자장면 한 그릇 주세요’ 하면 얼마나 맛없게 들리는지 아세요?”
제작진도 그의 개성을 보장해주려고 한다. 윤석훈 라디오2국 부장은 “김장훈의 인기요인은 돌발성”이라고 말했다.
6일 방송에서 미국 댄스 그룹 ‘립스 잉크’의 히트곡 ‘펑키타운(Funkytown)’이 나가는 동안 김장훈이 갑자기 “연탄불 꺼져 번개탄” 하며 따라 불러 청취자들을 놀라게 했다. 80년대의 ‘팝송 가사 우리말로 바꾸기 개그’가 생각나서 원곡의 ‘Won’t you take me to Funkytown’ 부분을 “연탄불 꺼져 번개탄”으로 부른 것.
반대로 청취자들이 그를 놀라게 할 때도 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는 한 여성은 “대통령에게 할 말이 있다”며 사연을 보내왔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감옥에도 난방과 따뜻한 물이 꼭 나오게 해주세요’라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30분간 모니터만 쳐다봤어요.”
그는 사회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도 연애도 다 허망하고, 유일하게 허망하지 않은 건 봉사입니다. ‘왼손스’라는 봉사 단체를 팬들과 만들어 바자회를 열곤 해요.”
‘왼손스’는 2002년 9월에 만든 단체로 이름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구절에서 따왔다.
그의 DJ 경력은 1987년 서울 은평구 구산동 예일여고 앞 분식집 ‘해피하우스’에서 시작됐다. 97년 CBS FM ‘김장훈의 우리들’에서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마니아층을 모았다.
“이제는 부드럽고 너그러워지고 싶어요. 그동안 화를 너무 많이 내서 지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힘으로 누르는 건 못 참아요.”
그는 4월 발매할 새 음반과 전국 투어 준비로 바쁘다. 미국에서 배운 연출력은 지난해 12월 24일 열린 싸이의 콘서트에서 보여줬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콘돔이 떨어진다’느니, 너무 부풀려 알려졌어요. 그런 게 아니라고 알리고 싶었죠. 이벤트는 노래를 도와야지 그 자체가 부각되면 안 되잖아요.”
김장훈은 종종 ‘공연에서 볼거리만 앞세운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 와중에 그의 홈페이지에 한 팬이 인상깊은 말을 남겼다.
“오빠의 공연에 볼거리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전 듣기만 하는 사람이에요. 노래만 들어도 힘이 나는걸요.”
그 팬은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내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한 진짜 명반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