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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스님'의 수필집…'차 안타는 스님'의 도보 순례기

입력 | 2004-01-15 18:26:00


‘풀리지 않는 끈을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

깊은 산사(山寺)의 스님은 가는 인연은 가는 대로 보내고, 오는 인연은 오는 대로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경북 봉화군 청량사 주지 지현(智玄·48) 스님이 수필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세상을여는창)을 펴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편으로 나눠 산사의 삶을 드러낸 책이다.

현재 종회의원, 영주 장애인복지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종단 내의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 1990년 폐사와 다름없는 청량사에 내려와 경운기를 타고 촌구석을 돌아다니며 포교를 해 청량사를 안동 봉화 영주 일대 포교의 중심 사찰로 키웠다. 또 4년 전 ‘산사음악회’를 열어 사찰마다 산사음악회 붐을 일으키게 했다. 지난해 서울팝스오케스트라를 초청해 개최한 청량사 산사음악회엔 무려 7000여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바쁜 삶 속에서도 틈틈이 적어낸 청량사 사람들과의 인연을 잔잔히 들려준다.

초파일마다 험한 산길을 거쳐 청량사를 찾는 시각장애인 김 처사에게서 삶의 기쁨을 엿보고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이던 아들을 위암으로 잃은 어머니에겐 그리움에 얽매이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또 ‘산꾼 할아버지’ 이대식옹의 유쾌한 삶의 태도를 보여 줬다. 그의 글을 보면 소중하면서도 얽매여서는 안 되는 인연에 대한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왜 그 길을 걸었을까’(호미)는 26년째 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을 고집하는 원공(圓空·60) 스님과 11명이 2002년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경기장 20곳을 도보로 순례한 대장정의 일지다. 이들은 123일간 하루 평균 35km, 총 4000km를 걸었다.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길가마다 널려 있는 쓰레기를 줍고 도라지씨를 뿌렸다. 걷다가 어두워지면 야영지, 민가, 여관, 목욕탕, 남의 집 마당 등 가리지 않고 잠을 잤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생라면이나 주먹밥을 먹어가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었다.

‘머문 자리는 늘 깨끗이 하고 떠나라’는 원공 스님의 말씀은 물리적 자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리에도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