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의 의뢰에 따라 한국여성개발원이 주도한 전국가족조사 결과는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인 가족도 급격한 변화와 해체의 바람을 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참여가 늘어남에 따라 여성의 의식수준 및 부부관계에 관한 기대는 급변하고 있지만 가정에서의 여성에 대한 기대는 여전해 가족 갈등과 해체의 잠재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결혼도 선택, 이혼도 선택=20, 30대의 40%가량이 경제문제나 배우자 부모와의 갈등 등을 부부간에 해결하지 못하면 이혼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여성의 48.8%, 30대 여성의 43.6%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젊은 층일수록 이혼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혼 응답자 1387명 중 장래 결혼계획이 있다는 응답이 남성은 55.5%, 여성은 49%에 그쳤다. 결혼계획이 없는 이유로 남성은 41%가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서’를 꼽았다. 그러나 여성의 31.7%는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만혼이나 독신으로 인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또 부부 응답자의 22%가 이혼을 고려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배우자가 계속해서 바람을 피운다면 이혼할 것이다’는 질문에 대해 부부 둘 다 찬성하는 비율이 57.4%로 이혼을 반대하는 경우(18.4%)의 3배가량이 됐다.
부부관계에 대해서는 61%가 만족했으나 남성의 만족도가 여성에 비해 컸다. 또 연령이 낮고 고학력이며 고소득자일수록 만족도가 높았다.
▽집안일은 여자가=식구 중에서 가사노동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으로 96%가 주부를 꼽았다. 취업여성인 경우도 93.1%가 본인이 가장 많은 가사를 담당한다고 응답해 취업 여부와 관계없이 가사노동은 여성이 전담하다시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노동시간은 평일에는 2, 3시간이 23.6%로 가장 많았고 토, 일요일에는 5시간 이상이 가장 많아 휴일에 여성의 가사노동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결혼 전 54%에 이르던 유업률(직업이 있는 비율)이 결혼과 출산을 거치면서 25%로 떨어지는 등 결혼과 출산이 여성의 취업생활을 단절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부유할수록 화목=지난 1년간 한국의 가족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느낀 사유로는 경제문제가 63.2%로 수위에 꼽혔다. 다음은 자녀 문제(43.9%)였다.
특히 가구소득에 따라 건강수준이 매우 큰 차이를 보였다. 150만원 미만 가구에서는 32.2%가 ‘건강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반면 300만원 이상 가구에서는 이 비율이 7.9%로 뚝 떨어졌다.
또 가족간 화목도도 300만원 이상 가구에서는 ‘화목하다’는 응답이 71.4%인 반면 150만원 미만 가구에서는 51.8%에 그쳤다. 경제문제가 가족의 건강과 화목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밖에 자녀수가 많을수록 가족의 건강상태는 대체로 좋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담당한 여성개발원 장혜경(張惠敬) 가족보건복지연구부장은 “탈가족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이는 사회변화의 흐름 속에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응현상”이라며 가족 해체를 막기 위해서는 “가족생활에 대한 국가 등 공적 영역의 정책적 개입과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성희기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