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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이브의 몸'…같은 병도 남녀따라 처방이 다르다

입력 | 2004-01-16 17:29:00

'이브의 몸'저자인 리가토는 동일한 원인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통증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지만,이를 단순히 엄살로 여기고 무시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로댕의 조각'짓눌린 카리아티드'.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브의 몸/메리엔 J 리가토지음 임지원 옮김/418쪽 1만8000원 사이언스북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TV드라마 ‘대장금’에서 주인공인 조선시대의 의녀는 동병이치(同病異治)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같은 병도 환자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 체중, 성장환경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환자에 대한 처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오랫동안 ‘닮고도 다른 벗’으로 진화해온 여자와 남자는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의료계에서 양성(兩性)의 차이가 놀라울 정도로 무시돼왔다고 말한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단지 여성의 건강에 관한 책’은 아니다. 병의 진단과 처방에서 남녀간의 차이를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같은 병인(病因)에 대한 반응부터 남성과 여성은 다른 경우가 많다. 대뇌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농도가 떨어지면 남성은 공격적이 되지만 여성은 대부분 의기소침해지고 내면으로 숨어버린다. 같은 병에 대한 원인도 남성과 여성이 다를 수 있다. 울혈성 심부전증의 경우 여성은 대부분 심장근육의 탄력이 줄어들면서 생기지만 남성은 근(筋)섬유가 약화된 결과 이 병이 나타날 때가 많다.

잘 걸리는 병도 다르다. 여성의 무릎 앞십자인대 파열은 남성보다 18배나 많다. 같은 처방에 대한 반응도 각각 다르다. 남성에게는 심박을 안정시키는 약물이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부정맥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병에 대한 예후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뇌중풍에 걸린 여성의 사망률은 남성의 경우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왜 ‘이브’들의 몸은 ‘아담’들의 몸과 같거나 비슷하게만 취급돼 왔을까. 저자에 의하면, 의사들이 질병의 진단과 처방에 이용하는 정보가 거의 전적으로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얻어져왔기 때문이다. 미국과학아카데미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저자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걸릴 수 있는 질병 가운데 3분의 2는 전적으로 남성만을 대상으로 연구돼 왔다’고 밝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단순히 남성들이 여성을 경시하거나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임상시험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서 여성을, 특히 가임기(可姙期)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지나친 배려’의 결과였다.

1958년 입덧 완화제로 인기를 끌던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기형아 출산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임상시험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경향은 더 커졌다. 여성의 호르몬 수치는 주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더 균일하고 안정적인 집단’인 남성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선호하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됐다.

저자는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보수적인’ 치료를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의사를 만나기 전 여성들은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통계에 따르면, 여성들이 심장 이상을 호소하면 의사가 이를 히스테리나 감정적인 요소에서 나온 것으로 단정할 확률은 남자환자들에 비해 두 배나 높다. 같은 증세도 여성은 의사에게 더 확신을 갖게 설명해야 올바른 조치가 취해진다는 조언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