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중독자/데이비드 L 와이너 지음 임지원 옮김/447쪽 1만9000원 이마고
성깔 사나운 상사에게서 호된 꾸중을 듣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직장인들이여, 어깨를 펴시라. ‘권력 중독자(Power Freaks)’란 책을 읽으면 위안과 용기를 얻을 것이니….
이 책은 탄탄한 심리학 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생한 사례와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일러 준다. 공부가 되면서도 실용성이 높은 책이다. 별다른 대안 없이 “야, 인생은 다 그런 거야. 참고 지내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거야”라는 투의 무책임한 조언을 던지지 않는다.
먼저 권력중독자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자. 자기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랫사람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만만하게 보이는 상대방을 짓밟는 사람이다. 아침식사 때는 자녀를, 회사에서는 부하와 동료를, 식당에서는 종업원을, 택시에서는 운전사를, 퇴근해서도 기운이 남으면 배우자를 괴롭힌다.
저자는 권력중독증을 10개 단계로 분류하는데 가장 중증인 10단계에 이르면 거의 정신질환자 수준이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등이 여기에 속한다. 권력중독의 뿌리는 원시적 생존본능에 있다. 현대인은 넥타이를 매고 있지만 유인원(類人猿)에서 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성이 남아있기 때문.
권력중독자인 상사를 대하는 비법은 무엇인가. 일단 순응해야 한다. 실수를 저질렀으면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 상사가 성질을 부리는 것을 받아내야 한다. 군대시절 훈련교관이 욕설을 퍼붓고 난 뒤 옆으로 지나가던 일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모욕을 당하더라도 그저 연기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상사와 겨루어 이길 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을 깨달아라. 얼굴을 맞대고 불벼락 맞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가급적 대면 기회를 회피하라.
괴물 같은 상사가 죽도록 일을 시키더라도 다른 대안이 없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그래도 못 견디겠다면 다른 직장에 낼 이력서를 준비하라. 심리학에서 이 같은 회피전략은 ‘회피형 대처 스타일’ 또는 ‘경계선 설정’ 등으로 불린다.
권력중독자인 동료를 대할 때는 침착하고 당당해야 한다. 상대가 공격해 올 때엔 오히려 유머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뒤집으면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심리학자이자 경영컨설턴트인 저자는 “귀하가 권력중독자와 공존하면서 어느 정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귀하는 정말 위대한 일을 해낸 셈”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한국의 직장인 대부분은 산사(山寺)의 스님 못지않게 사바세계 직장에서 수행(修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지닌 강력한 리더십의 소유자’로 흔히 미화되는 권력중독자들이 한국에는 미국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한국의 조직문화는 상명하복이 큰 흐름 아닌가. 부하들은 그 혹독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버텨내니 몸 안에 사리(舍利)가 생길 정도가 아니겠는가.
고승철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