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 제작한 신작 앞에 서 있는 작가 전광영씨. -성남=허문명기자
작가 전광영씨(61)는 새해 벽두 날아든 두 가지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면서 들떠 있었다. 우선 국내 작가로는 처음 영국 런던 애널리 주다 갤러리에서 내년 12월 대규모 회고전을 열자는 제의를 받았다. 데이비드 호크니, 안토니 카로 등 세계 정상급 작가들이 개인전을 열었던 애널리 주다 갤러리는 미국 뉴욕 가고시안, 런던 화이트 큐브 등과 함께 세계 10대 갤러리로 꼽히는 곳.
두 번째 낭보는 새해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 호주 지사가 발행하는 호주 고등학생용 미술 교과서에 자신의 작품 이미지와 작품 세계가 소개된다는 것. 그는 ‘20세기 현대 미술사’ 섹션에 한국 작가로는 서도호씨와 함께 세계 현대미술을 이끌어 가는 작가로 선정됐다.
작은 삼각형 모양으로 자른 스티로폼을 한지(韓紙)로 싸서 이를 화면에 붙이는 작업을 해온 작가는 올해를 30여년 작가 인생의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미 바젤, 시카고, 마이애미, 쾰른 등 해외 아트페어를 통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지만 그는 ‘올해가 새로운 작가 인생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전 화백은 9월 화랑가가 밀집한 뉴욕 첼시가의 킴포스트 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갖는다. 이번이 뉴욕에서 갖는 네 번째 개인전이지만, 세계 미술의 심장부에서 전시 성수기에 5주 동안 롱런 전시회를 갖기는 처음이다. 그는 토종 한국 작가로는 이례적으로 뉴욕 화랑(킴포스트)에 전속돼 있다.
그의 끊임없는 변신과 변화의 노력은 새해 초 선보인 신작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경기 성남시 판교 작업실에 걸린 신작들은 한지로 싼 스티로폼 조각들의 단순한 집적이 아니다. 스티로폼 조각들을 서로 엇갈리게 해 만든 사방으로 뻗는 선들, 한지를 물들인 먹의 농담(濃淡)에 의해 생기는 탁월한 부조(浮彫) 효과는 수많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연상케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평면이지만, 멀리서 보면 농담에 따른 요철효과가 두드러진다.
흡사 논바닥처럼 갈라진 땅 위에 두 개의 발자국이 지나간 듯 움푹 파인 화면은 강퍅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 삶에 대한 비유인 듯도 하고, 메마르고 차가운 현실을 딛고 있는 우리 내면의 공포를 표현한 듯도 하다.
“더 이상 한국적 정체성에만 한정되는 작가로 머물고 싶지 않아요. 서양과 동양, 한국과 미국을 떠나 인간 삶의 보편성을 화면에 담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을 42.195km를 완주하는 마라톤 선수에 비유한다. 그는 초반부터 넘어지고 온갖 장애물에 부딪히는 험난한 레이스를 펼치면서도 무명과 절망의 세월을 이겨냈다. 그는 이제 2004년 새로운 질주를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
성남=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