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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목수정/문화산업이 곧 문화인가?

입력 | 2004-01-18 18:19:00


한국을 테마로 한 프랑스 파리 가을축제가 막바지였던 2002년 12월 영화감독 이창동은 ‘오아시스’를 들고 파리를 찾았다. 이창동과 관객간의 대화가 있던 날 극장 앞에 모여든 한국 유학생들에게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방금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극장 주변은 ‘감격’으로 술렁였다. 거기에 이창동의 강렬한 리얼리즘이 던져준 감동이 오버랩 되면서 우리들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1년 뒤 이창동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의 가슴을 뒤흔든다. 지난해 12월 문화관광부 장관 이창동은 21세기를 ‘콘텐츠의 세기’로 규정하고 2008년까지 우리나라를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에 진입시키기 위한 정책비전을 제시했다.

‘오아시스’에서 그토록 인상적인 인식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 사람의 발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물론 문화산업에 대한 야심이야 뭐라 하기 어렵다. 다만 문화산업에 모든 국운이 걸려 있는 듯이 말하는 태도가 수상하고, ‘5년 내 세계 5위의 문화산업대국’ 운운한 것은 개발독재 시절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재판인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한국정부의 문화산업에 대한 관심은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산업이 사회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 관료들이 ‘문화’와 ‘문화산업’을 혼동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문화산업이 문화를 완전히 대표하게 됐다. 모든 것을 시장화해 버리는 신자유경제주의의 완벽한 승리다.

산업의 영역에 갇힌 문화와 자유롭게 선 문화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문화산업의 문화는 철저하게 시장논리와 흥행공식에 따라 만들어진 상품에 불과하다.

문화는 근본적으로 정신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영혼의 양식이 아닌가. 블록버스터를 양산할 수 있는 시스템 지원보다 자유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문화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와 환경 조성이 우선이다.

프랑스는 문화산업 대국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문화가 있다. 예를 들어 파리에는 전 세계 모든 시대의 영화들이 공존한다. 1920년대의 무성영화부터 우리나라 장선우 감독의 작품 등 제3세계 영화까지 다양한 갈래의 영화들이 폭넓은 취향의 관객을 찾고 있다.

1946년 프랑스는 문화를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국민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로 헌법에 명시한 뒤 ‘문화의 민주화’를 통한 ‘정신의 민주화’라는, 프랑스식 문화정치를 추진해 왔다. ‘지상에서 민주주의는 아직 한번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프랑스의 문화정치 또한 정신의 민주화라는 대명제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그 반면 세계 제1의 문화산업 대국이라는 미국을 보자. 전 세계가 그들이 만든 코카콜라를 마시듯 영화를 보는 사람 둘 중 하나는 미국영화를 본다. 그러나 메가톤급 성공신화를 이어가는 ‘다이하드’ ‘터미네이터’ 그리고 ‘매트릭스’ 시리즈가 미국인들의 주머니를 채울지언정 영혼을 살찌우고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문화산업’을 ‘문화’로 호도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

목수정 대학로포럼 연구위원·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