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 이상훈이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LG를 떠나 SK로 집을 옮겼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기타 연주 문제로 감독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얘기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만 가지고 보면 저절로 ‘양비론’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동료들은 경기에 열중해 있는데 자기는 라커룸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면 그건 직업의식을 의심할 만큼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지훈련 캠프에 기타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학 신입생들에게 기숙사에는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건전한 취미 생활은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 아닌가? 그러므로 진짜 이유는 (늘 그렇듯이!)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빙산의 일각’에 집착하는 것은 긴 머리칼, 기타 연주, 자존심 강한 성격, 이런 것들이 팀워크와 기강을 해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굳이 ‘톨레랑스’ 같은, 먹물 냄새나는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람마다 자존심과 개성이 있고 개인의 사생활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개성이 조화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팀워크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전제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개성과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행위(예를 들어 훈련 캠프에서 남들이 잘 때 기타를 치는 것)를 ‘기강’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개성과 팀워크는 대립적인 개념이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은 버릇없고 이기적인 행동인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기타 연주 문제로 촉발된 감정 대립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며 평행선을 달리게 된 것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 때문에 속이 상하는 경우가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형과 아우가 서로 싸울 때는 정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 야구팬들도 마찬가지다. ‘야생마’도 ‘젊은 호랑이’도 모두 한 식구와 같은데 이렇게 ‘동물의 왕국’의 영역 싸움처럼 대립하는 걸 보면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 하루빨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멋지게 새 출발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상훈은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이미 충분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메이저리그라는 더욱 큰 무대로 진출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던 ‘진짜 사나이’다. 미국에서 2년 반을 지내면서 뼈아픈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 앞에서 절대로 도망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마운드로 달려 나올 때 나 같은 ‘번데기(초보라는 의미) 야구팬’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며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이상훈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갈깃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한다. 혹시나 ‘삼손’이 머리칼을 자르면 힘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나는 앞으로도 그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17일 이상훈이 리드보컬로 있는 그룹 ‘WHAT’의 공연이 열렸다는데, 앞으로 공연이 다시 열린다면 홍익대 앞 클럽을 찾아 그의 연주와 노래도 들어보고 싶다.
강석진 한국고등과학원 교수·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