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다시 미쳐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나를 잘 참아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슬이 촉촉한 초원을 가로질러 템스강에 이르렀을 때 3월의 강바람은 차가웠다. 그녀는 외투 양쪽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은 뒤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버지니아 울프. 그 짧지 않은 삶은 고단했다.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와 이를 비웃듯 거듭 재발했던 신경질환. 고통스럽도록 예민했던 자의식은 끝내 그녀의 존재를 뿌리까지 할퀴었다. ‘여성으로서 글쓰기’는 마지막까지 정신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안간힘이었다.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로 이어지는 그녀의 모더니즘 소설은 우울하다. 슬프고 신비롭다.
아마도 울프의 가장 큰 미덕은 문학사에 인간의 ‘내면’이라는 가장 매혹적이고 방대한 자료를 기증한 것일 터이다. “글 쓰는 자아에게 ‘자신’은 재료이자 동시에 도구이다.”
울프에게 두 의붓오빠는 견디기 힘든 존재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육체적 모욕’을 가했다. 그 성적 학대는 여섯 살의 울프에게 ‘남자는 여자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을 심어 주었다.
동성애에 탐닉했던 울프. 그녀는 자웅동체(雌雄同體)의 양성(兩性) 이미지에 몰두했다.
환상소설 ‘올랜도’는 1925년부터 1929년까지 깊은 애정을 나누었던 귀족 여성 비타 웨스트를 모델로 하고 있다. 울프는 자신의 성적 환상을 그려낸다. ‘소년 같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하고, 공주다운 고귀한 기품과 그 틈틈이 탕녀의 분방함을 드러내는….’
울프에 대해서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형식에 사로잡힌 난해한 모더니스트라든가 조이스나 예이츠, 포스터와 같은 당대의 작가들에 비해 2급의 작가에 불과하다는 것. 자살로 마감한 그녀의 사생활은 ‘단지 부르주아의 폐쇄적인 속물근성일 뿐’이라는 것.
그녀의 삶과 작품은 여전히 모호(模糊)함에 휩싸여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