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공사가 한창인 청계천 근방에서 헌책방을 경영하는 이응민씨. 청계천 복원공사로 인한 매출 감소를 인터넷 판매 개척으로 극복한 그에게서 남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권주훈기자
청계천이 내다보이는 서울 평화시장에서 대를 이어 2평 남짓한 조그만 헌책방을 운영하는 ‘상현서림’ 주인 이응민씨(39). 지난해 7월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된 이후 매출이 떨어져 대다수 청계천 일대 상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지만 이씨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헌책만 파는, 어찌 보면 저물어가는 사양(斜陽) 비즈니스를 고집하는 그는 요즘 청계천 공사가 시작되기 전보다 10% 이상 매출을 더 올리고 있다. 인터넷 경매라는 새로운 유통방식을 개척한 덕택이다.
오프라인 매출은 공사의 영향으로 4분의 1 정도 감소했으나 예전에는 없었던 인터넷 경매 매출이 월 300만원 정도 꾸준히 뒷받침해주면서 전체 매출이 오히려 늘어나게 된 것.
▽위기를 기회로=“공사가 시작되면서 매출이 절반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문을 닫아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지요.”
지난해 여름 눈앞이 막막했던 이씨는 동생들이 권유한 인터넷 경매에서 희망을 찾았다. 인터넷 경매는커녕 인터넷이 뭔지도 잘 모르는 ‘넷맹’이었지만 헌책을 경매로 내놓는 등록비가 700원 미만이라는 말에 솔깃했다. 그 정도 금액이라면 안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성공 예감은 일찍 찾아왔다. 4시간 동안 손가락 두 개로 힘들게 매물로 등록한 12권짜리 ‘빨강머리 앤’ 전집이 대박을 터뜨린 것. 1만9900원에 판매가를 올려놓으면 네티즌간 경매를 통해 2만3000원까지 낙찰 가격이 올라가곤 했는데 하루에 최고 57질까지 팔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요즘에도 매일 1, 2시간씩을 할애해 헌책 4, 5권을 인터넷에 올린다는 그는 “시간을 더 투자하면 더 벌 수 있겠지만 혼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챙기려니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이씨는 반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몇 가지 노하우를 터득했다.
첫째는 솔직함. 솔직하게 설명을 달아야 소비자의 불만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사진을 올릴 때도 흠집이 가장 많이 난 부분이 보이도록 올리면 나중에 헌책을 받아본 손님이 “생각보다 깨끗하네”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씨는 또 헌책을 비닐과 종이상자를 이용해 3겹으로 포장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포장이 뜯겨진 채 배달돼 고객 항의를 받은 사건이 계기가 됐다.
경매를 마감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는 항상 오후 11시15분으로 마감시간을 정한다. 인기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이 오후 11시이기 때문에 PC를 켜는 시간을 고려해 그 시간으로 정했다는 설명.
인터넷 경매사이트 옥션(www.auction.co.kr)과 온켓(www.onket.com) 등에는 이씨처럼 사이버공간에 제2의 매장을 낸 동대문 남대문 등 재래시장 상인 20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