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범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비발디의 ‘사계’로 유명한 이탈리아 이 무지치 악단의 내한공연을 감상했다. 창단한 지 50년이 된 악단으로, 단원들의 나이가 지긋해서 내심 연주력이 감퇴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공연을 지켜봤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 무지치 악단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탄탄한 실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실내악 음악회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재미마저 줬다. 프로그램 구성에서 등·퇴장에 이르기까지 꾸밈없고 자연스럽게 청중을 사로잡았다. ‘백전노장의 힘’이었다. 노장들이 활약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음악 풍토가 부러웠다.
외국 교향악단이 내한공연을 할 때마다 가장 부러운 것은 관록이 느껴지는 백발의 연주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으면서 조화로운 하모니를 만들고 그 악단의 전통을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레 물려준다는 점이다. 우리도 이렇게 멋지고 실력 있는 백발의 원로들이 교향악단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필자는 386세대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세대교체가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함께 존경 받는 백발의 노장들이, 거장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해야 한다. 음악계에서 흔히 수식어로 쓰이는 ‘젊은 거장’이라는 말은 사실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사회 각 분야에 인생을 진지하게 경험한 존경 받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세대교체가 맹목적인 유행이 돼선 곤란하다.
미국 서부시대에 서진하는 백인 카우보이들에게 쫓기던 인디언들이 마지막으로 원로인 시애틀 추장을 찾아가 “어쩔 수 없는 대세이니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는 말을 듣고 전쟁을 중단했던 것처럼 방향타를 제시해 줄 수 있는 원로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장일범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