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흔한 잡초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선택된 삶이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많은 종자를 세상에 남기지만, 이 중 극소수만이 생명을 부지하기 때문이다. 들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콘크리트 위에 떨어져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죽거나, 땅 속 깊이 묻혀 태어나지도 못하고 썩어버리거나, 구사일생으로 어린 싹을 냈지만 누군가에게 짓밟혀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태어났다고 모두 잘 자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잡초 군락 속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조금이라도 많은 양분과 햇빛,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생장억제물질을 분비해 주변 식물들을 죽이거나 잘 자라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외래종과도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식물들은 종족 번창을 위해 수만개에 이르는 종자를 만들고, 영글면 영그는 대로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 봉선화처럼 튀어나가게도, 민들레처럼 날아가게도 해 되도록 멀리까지 종자를 흩뿌린다. 척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은 어린 나이부터 종자를 맺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남은 야생초의 번식력과 생존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막상 야생초를 옮겨 심거나 재배하려고 하면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벼를 비롯해 콩 밀 등 모든 작물도 인간이 손을 대기 전에는 볼품없던 야생초였다. 인간의 삶을 방해할 경우 잡초로 분류돼 천시당한 것이다. 가령 콩을 재배하는 동안 옥수수나 고구마가 자라면 모두 잡초로 취급받는다. 반면 야생초는 정원으로 옮겨지면 야생화, 식탁에 오르면 산채나물, 약리효과가 밝혀지면 건강식품, 술이나 음료로 만들어지면 가공식품, 한약재로 쓰이면 약초, 생명공학에서는 유전자원, 두엄으로 쓰이면 유기농자재, 공원에 쓰이면 조경식물, 빗자루를 만들면 생활용품, 지팡이를 만들면 효도상품 등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인간의 욕심과 기준에서 만들어진 분류일 뿐이다.
야생초를 야인(野人)으로 비유한다면 ‘잡초 같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잡초 같은 삶을 의미하는가 하면, 원하지 않는 곳에 원하지 않는 시기에 나타난 불필요한 존재로 비유될 수도 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도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거나, 너무 오래 남아 있으면 곧 잡초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콩과 옥수수가 모두 소중한 작물이듯 잡초 같은 인생도 모두 나름대로 능력 있는 인간이다. 만일 더덕밭에서 산삼(山蔘)이 자란다면 무엇이 잡초일까. 분명 더덕을 뽑아내고 산삼밭을 만들게 될 것이고 작물이었던 더덕이 잡초로 바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잡초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스스로 잡초가 될 수도 있다.
어디서건 무성하게 자라는 야생초도, 좁은 지구에 넘쳐나는 사람들도 모두 선택된 존재다. 우리의 삶도 수많은 야생초처럼 각자가 받은 ‘달란트’에 감사하며 하늘이 보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리라.
▼약력 ▼
1957년생. 전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 이화학연구소,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등에서 연구했다. 1986년 한국화학연구원에 들어가 환경친화형 국산제초제를 개발했으며, 1999년과 2001년 아시아태평양잡초학회에서 2회 연속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역서로 ‘제초제와 식물생리’가 있다.
황인택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