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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가난하면 명문대 못 가는 평준화

입력 | 2004-01-26 18:55:00


올해로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된 지 30년을 맞는다. 1974년 평준화를 채택할 당시 가장 큰 명분은 과외를 몰아내는 것이었고, 둘째는 교육기회의 균등이었다. 그동안 이 두 가지가 얼마만큼 달성됐을까. 먼저 과외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새 ‘세계 제1의 사교육 국가’가 됐다. 과외 추방 목표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두 번째 명분인 교육기회의 균등은 어떤가. 지난 34년간 서울대 사회대 입학생 전원의 신상정보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평준화체제에서 저소득층 자녀가 서울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날로 희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소득층의 입학률은 일반 가정보다 최고 17배나 높았다. 평준화 효과가 교육기회의 균등은커녕 오히려 악화시켜 온 것으로 드러난 게 아닌가. 결국 평준화의 두 목표는 모두 이뤄지지 못했다.

아직도 명문대 진학이 신분 상승과 사회적 계층이동의 주요 수단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험생 누구나 바라는 명문대의 문이 고소득층에는 활짝 열려 있는 반면 저소득층에는 굳게 닫힌 불평등한 현실 앞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머리 좋은 인재들이 가난 때문에 명문대 진학이 좌절되고 빈곤의 대물림이 계속된다면 꿈이 사라진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차별적 구조가 고착되는 것을 막는 한편 저소득층에도 기회를 확대해 줘야 한다.

일부에서는 또 한번 대입제도를 바꿔 보자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대입제도의 변경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고소득층이었음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근본대책은 저소득층의 우수학생들이 다른 우수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경쟁을 통해 명문대로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판명 난 평준화의 덫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