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나비부인’이 제작된 이래 일본을 그린 서양의 작품은 적지 않다. 그러나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일본은 ‘변방의 야만국가’였을 뿐. 게이샤나 할복자살 가미카제 스모 닌자 등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즘 일본에서는 일본인 스스로가 박수를 보내는 할리우드 영화 두 편이 화제다. ‘킬 빌’과 ‘라스트 사무라이’. 두 영화 모두 사무라이 정신에 대한 경의와 동경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일본인이 만든 영화보다 일본 혼을 더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는 지난해 12월 6일 개봉 이후 줄곧 일본 내 흥행순위 1, 2위권에 오르고 있는 화제작. 배경은 메이지 시대 일본, 올그렌 대위(톰 크루즈)가 신식군대 도입을 추진하는 신정부의 초대로 일본에 온다. 그는 서양화에 반대하는 사무라이 가쓰모토와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뒤 사무라이 정신에 이끌려 결국 가쓰모토와 행동을 같이 한다.
이 영화에서는 올그렌 대위가 절망에 빠진 가쓰모토에게 “지금이야말로 사무라이 정신이 필요한 시대”라고 위로하는가 하면 가쓰모토의 죽음을 전해들은 메이지천황이 “일본은 근대화를 위해 서양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다가 일본의 것을 잃어버렸다”며 한탄한다.
이 영화의 어프로치는 철저한 리얼리즘.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하버드대에서 전 주일대사였던 라이샤워 교수에게 일본 문화를 배운 일본통. 그는 수많은 일본인 컨설턴트를 고용해 의상이나 미술에서 전투 진용에 이르기까지 고증과 조사를 거듭했다.
주연과 제작을 맡은 크루즈는 지난해 말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명예와 충의를 존중하는 무사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무라이의 미학과 그 강력한 힘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며 일본을 추켜올렸다.
한편 ‘킬 빌’은 ‘라스트 사무라이’에 한발 앞서 공개돼 흥행수입 30억엔(약300억원)을 넘는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반죽음을 당한 여자가 복수를 위해 일본 오키나와의 대장장이를 찾아가 일본도를 손에 넣은 뒤 차례차례 대상을 제거한다는 내용.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리얼리즘에 충실한 ‘라스트 사무라이’와는 달리 황당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면 고급 요정의 한가운데 디스코텍이 있거나 비행기 좌석에 일본도 홀더가 달려있고 승객들이 모두 일본도를 차고 있는 등의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그러나 일본의 영화 비평가들은 “오해나 편견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거꾸로 이를 넘어서려는 계산”이라고 감싼다. 할리우드 영화가 일본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감동과 만족은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가쓰모토 역을 맡았던 와타나베 겐이 골든 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더욱 고조됐다. 아쉽게도 25일 골든 글로브상 수상식에서는 탈락하고 말았지만 “사무라이 정신이 드디어 서양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뿌듯함은 당분간 일본에서 계속될 것 같다.
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