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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천광암/경제교육

입력 | 2004-01-29 19:09:00


H사의 최고경영자는 창업주에서 창업주의 동생, 창업주의 조카, 창업주의 아들로 바뀌어 왔다. 반면 Y사는 우리나라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장 앞서 도입하고 정착시킨 기업으로 꼽힌다. 일부 경제교과서의 가르침대로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너 체제보다 우월하다면 Y사는 H사보다 성공한 기업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78년 전 설립된 Y사는 2002년 한 해 동안 2850억원의 매출을 올려 457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37년의 역사를 가진 H사는 같은 해 26조3369억원어치의 자동차를 팔아 1조4436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Y사는 ‘성실한 납세’와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등 공익성이 강한 기업이념을 추구한다. 반면 H사는 ‘세계 일류 자동차회사’라는 사익(私益)성이 강한 기업비전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Y사는 H사보다 국민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할까. Y사는 수출이 미미한 반면 H사는 2002년에 12조1824억원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또 H사는 Y사보다 12배나 많은 5399억원을 법인세로 냈다. ‘최고의 복지’라는 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H사의 기여가 월등하다. 종업원 수는 H사가 Y사의 45배. H사의 납품업체들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80만개가 넘는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5단체장이 그제 중고교 교사 200명을 상대로 경제교육에 관한 특강을 했다. 박 회장은 “기업의 목적이 부(富)의 사회 환원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기업은 우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또 초중고교 경제교과서에 잘못된 경제인식을 심어주는 내용이 64가지나 있다고 지적했다.

▷Y사는 꼭 필요한 회사다. 찬사를 받을 만한 자격도 충분하다. 그러나 모든 기업에 이런 잣대를 들이대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불필요한 규제가 등장한다. 사업다각화를 ‘문어발식 확장’이라며 나쁘게만 보는 일반적 인식도 마찬가지다. 모든 기업이 전문화에만 매달렸다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반도체산업이나 조선산업은 꽃피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그룹도 잘해야 세계 최고의 섬유회사 아니면 설탕회사로 만족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