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났으니 분명히 잔나비 해, 갑신년에 들어선 셈이다.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상 갑신년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자.
60갑자를 5번 거슬러 올라가면 1704년(숙종 30년)에 이른다. 유럽에서는 영국군이 지브롤터를 점령하고 철학자 로크가 사망했다. 뉴턴이 ‘광학론’을 쓰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칸타타 1번을 작곡했다. 나라 안에서는 조운(漕運)제도를 고치고, 도성을 고쳐 쌓는 공사를 벌이나 15세 이하 기민(饑民·굶주린 백성)을 노비로 삼아 입에 풀칠하게 했다 한다.
▼역사속 갑신년 國運부침 뚜렷 ▼
60년을 건너뛰어 1764년에 오면 나라 밖에서는 볼테르가 ‘철학사전’을 쓰고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가 런던에서 연주회를 열고, 하이든은 심포니 22번, 여덟 살의 모차르트는 첫 심포니를 작곡했다. 와트가 콘덴서를 고안해 증기기관 발명에 다가서 산업혁명을 예고했다. 국내에서는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대왕이 노망기를 부리고 있었다. 충량과(忠良科)를 행해 인재를 뽑고 북도(北道)에 감사이사를 파견했다. 고구마가 전래된 것도 이때란다.
다시 60년을 내려오면 순조 24년(1824년)에 이른다. 여름에 삼남지방에 큰 수해가 나 많은 인명피해, 이재민이 생겼다. 당시 대국으로 모시던 중국 연경으로 보내는 사신행차를 줄인 것이 10여년 전 홍경래 난(亂) 때 전사한 이들을 위해 사액(賜額·임금이 사당에 이름을 지어줌)한 것과 함께 국내의 빅뉴스였다. 나라 밖에서는 영국군이 미얀마 수도를 점령하는 등 서구열강의 동진이 두드러졌다. 영국 시인 바이런이 죽고, 프랑스 작가 A 뒤마(아들)가 태어났다. 화가 들라크루아가 활동했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작곡되고, 스메타나와 브루크너가 출생했다. 영국에서는 마침내 노동자의 조합결성이 허용됐다.
1884년(고종 21년)은 세계정세에 눈이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들의 다툼이 치열했다. 이태 전 임오군란으로 불안정해진 정세 속에서 우정국 낙성식을 계기로 급진적 개혁을 꾀하는 정변이 일어났다. 따지고 보면 청국 세력과 일본 세력의 충돌이었다. 청국의 입김만 강화되고 결국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밖에서는 서구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영국 고든 장군이 하르툼을 점령하고, 독일군이 아프리카 서남부를 점령했다.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 입센의 ‘야생 오리’, 스펜서의 ‘인간 대 국가’가 출판된다. 로댕은 ‘칼레의 시민들’을 조각하고, 음악가 브람스, 말러 등이 작곡한다. 런던에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고, 남아공 트란스발 지방에서 금광 발견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1944년에 이르면 한반도는 일제 강점하에 신음하고,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국내에서는 젊은이를 전장으로 내모는 학병제가 시행되고, 중국 소재 임시정부에서는 김구 선생이 주석으로 선임됐다. 유럽에서는 연합군이 이탈리아 전투를 거쳐 드디어 6월 6일(D데이)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해 승전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엘리엇의 ‘사중주’, 사르트르의 ‘출구는 없다’가 출판되고, 화가 피카소, 루오 등이 활약하고 칸딘스키가 사망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 8번, 바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작곡된다.
▼밖으로 눈돌려 세계화 물결타야 ▼
그 이후 60년간 한국은 광복 독립했고 국토분단과 6·25전쟁을 겪었음에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를 이룩했다. 과거 어느 기간에 비해 큰 업적을 이룩한 것이 바로 20세기 후반의 60년이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로 보면 세계 12위권, 교역 규모로도 역시 무시 못 할 경제대국이 되었다. 휴대전화 반도체 철강 선박 자동차 등 세계 일류상품을 한국이 생산하기 시작했다. 일부 음악인들이 세계 정상급에 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가장 좋은 시절인 셈이다.
역사의 교훈은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의 물결을 탈 때에만 나라가 융성하고 안에서 아귀다툼을 하던 때에는 나라 살림이 피폐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며, 60년 뒤 후손을 위해 어떤 유산을 준비하고 있는가.
김병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교수·경제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