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나스닥지수가 갑자기 폭락하자 뉴욕 증권거래소의 한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다.프랭크 파트노이 교수는 ‘탐욕’의 전염을 막기 위해 장내거래 규모와 맞먹는 장외거래에 대해서도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전염성 탐욕/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이명재 이주명 옮김/670쪽 1만7000원 필맥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연간 수억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트레이더로 주목 받고 있던 앤디 크리거가 1988년 1월 일류 투자은행인 뱅커스 트러스트를 떠나 카리브 해변으로 갔다. 사임의 변은 “일하는 데 지쳐버려 이제 좀 쉬고 싶다”는 것.
그러나 내막은 뱅커스 트러스트가 그를 스카우트할 때 내걸었던 조건, 즉 자신이 번 수익의 5%를 보너스로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래의 약속대로라면 크리거는 1987년 수익에 대한 보너스로 1500만달러를 받아야 했지만, 뱅커스 트러스트는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그것은 너무 큰 액수라며 300만달러만 지급했다.
그런데 크리거가 이미 미국을 떠난 뒤 뱅커스 트러스트는 그가 올린 1987년 거래의 이익 실적이 8000만달러나 과대평가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뱅커스 트러스트는 이 회사의 1987년 연간 실적을 공식적으로 발표해 버린 뒤였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주주들과 언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회계조작을 통해 이 사실을 숨기려 했다. 놀랍게도 증권거래위원회와 검찰이 이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들은 뱅커스 트러스트는 물론 이 투자은행의 경영진과 크리거, 그 외의 전현직 임원들에 대해 아무 소송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 주요 이유는 크리거가 이용했던 통화옵션의 가치 평가와 관련된 사건을 기소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데다 그 과정 자체가 매우 복잡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각국 통화의 환율 변동을 예측해 매도 또는 매수의 권리를 거래하는 통화옵션은 당시 상당수의 트레이더들조차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일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대 법대 교수인 저자는 이 때부터 허술한 법의 규제를 피해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의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해 최근 미국 재계를 뒤흔든 엔론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대학교수가 되기 전에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 등에서 근무했고 변호사로서 금융부정 사건들을 다루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벌어진 ‘금융활극’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나아가 그는 금융시장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증권거래소를 경유하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장외 파생상품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저자에 따르면 뱅커스 트러스트의 회계조작에 대해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와 검찰이 적극 대응하지 못한 주요 이유도 바로 이 장외거래의 복잡성에 함부로 손대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를 스스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주식을 산 기업의 연차보고서를 주의 깊게 읽어봤는가? 나는 그 기업이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고객은 누구인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나는 그 기업이 복잡한 금융수단에 얼마나 관련돼 있는지 알고 있는가?”
만약 이 모든 질문에 다 ‘아니오’라고 답했다면 바로 투자의 손실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부패에도 투자자 자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