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5·LA 갤럭시)는 공부하는 선수다. 축구행정가가 될지, 지도자가 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때가 오면 어떤 자리라도 소화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도 책을 놓지 않는다. 지난달 30일 실시된 고려대 체육학과 석사학위 논문자격시험을 위해 잠시 귀국한 그를 서울 힐튼호텔에서 만났다.
#준비하는 자만이 미래를 얻는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못할 것 없다고 봅니다. 전 아직 젊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안돼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은퇴할 나이에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뛰고 있는 것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란다. 영어를 모르면 국제무대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일본 가시와 레이솔 시절이던 2000년 석사과정 시험을 본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2002년 국내에 복귀하면서 복학해 이제야 과정을 마쳤다.
학교 측의 배려로 미국에 있으면서도 리포트 제출로 학점을 땄지만 열심히 책을 봤다. 석사학위 논문(운동생리학)을 쓴 뒤엔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공부 안한 것은 후회
“축구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다만 학창시절에 공부를 게을리 한 것은 후회가 됩니다. 지금 어린 선수들은 축구와 공부를 함께 열심히 해서 ‘문무’를 겸비한 선수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가끔씩 머리를 스치는 불안한 생각이 있다. 축구만 하다가 인생을 망치기도 하는 우리 선수들 때문이다.
“미국에선 어린이들이 축구를 취미로 해요. 그런데 한국에선 축구가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잖아요. 무엇보다 어릴 땐 성적보다는 즐기는 축구를 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은 아이들이 축구를 못하게 됐을 때 다른 분야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공부할 기회도 줘야 합니다.”
학창시절 운동만 하느라 친구들을 제대로 사귀지 못한 것도 그에겐 아쉬운 부분이었다.
#한국 축구 프로가 돼야 한다
“지금 한국축구가 위기라는 말이 많습니다. 지도자와 행정가, 선수들이 프로가 돼야 합니다. 감독은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행정가는 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선수들도 온몸을 내던져 이겨야겠다는 정신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최근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과 관련해 “책임을 선수들에게 돌리는 감독은 감독이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쿠엘류 감독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원론적인 얘기였죠. 제가 대표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2002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이 쿠엘류 감독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선수들을 조련해 나갈 것으로 봅니다. 히딩크 감독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이끄는 스타일이라면 쿠엘류 감독은 선수들에게 맡기는 것 같습니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한국 축구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히딩크 감독 같은 인물만 찾아야 할 테니까요.”
#스타플레이어 사회참여 많아야
“스타의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눈을 돌려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불우한 청소년에게 계속 도움을 줄 것입니다.”
홍명보는 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만들어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지난해 말에는 월드컵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는 소아암 어린이 돕기 자선경기를 열었다.
외국에선 대부분의 스타선수들이 장학회를 만들어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로 환원하고 있는데 한국엔 그런 선수들이 별로 없어 아쉽단다. 그래서 매년 자선경기를 열고 장학사업도 더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