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명의 국회의원들이 한 달 사이에 무더기로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때의 불법적인 대선자금 관련자들과 개인비리 혐의를 받는 의원이 각 정당에 두루 섞여 있다. 다선 중진의원이 많은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므로 국회의원도 범죄 혐의가 있으면 구속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연이은 구속사태를 보고 모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갈 데까지 간 극심한 정치부패를 확인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부패정치 의식-제도 다 바꿔야 ▼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친 지난 10년간 한결같이 외친 정치개혁과 부정비리 척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실망스럽고 허탈하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전유물인 양 부르짖는 정치개혁 구호도 ‘헛소리’로 들린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들이 떠드는 말은 진솔한 것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티코’와 ‘리무진’의 크기를 따지려는 생각 속에 참다운 개혁마인드는 기대하기 어렵다. 티코나 리무진이나 인명사고를 낼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위험하기로 치면 초보 운전자가 티코를 몰고 겁 없이 고속도로를 과속운전하는 쪽이 더하다. 진정한 정치개혁은 티코와 리무진의 차이를 말하면서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의식을 버리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남의 탓을 말하기 전에 ‘내 탓’을 살피고 반성할 줄 아는 겸허한 마음가짐이 없는 정치개혁의 구호는 또 하나의 빛 좋은 선거전략이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끈질긴 부정과 비리의 악순환을 청산하고 획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치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자기반성 내지 의식개혁과 함께 제도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역선거구 획정문제 때문에 선거법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는 후진적인 제도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국회의원은 출신 지역구가 아닌 전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선거구 획정은 선거법의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선거법에서는 지역선거구의 수와 선거구 획정의 기준과 방법만을 정해 놓고, 구체적인 선거구 획정은 4년마다 인구변동을 감안해서 중립적이고 독립된 기구에서 독자적으로 결정하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
나아가 정치권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다. 지금 각 정당이 겪고 있는 인위적인 물갈이 홍역은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처럼 3선 정도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고치면 된다. ‘국회의원의 3선 제한’ 입법은 헌법에 비추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것이 입법화되면 장기적으로는 총선 때마다 최소한 국회의원 3분의 1이 제도적으로 물갈이되기 때문에 정치 부패의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적지 않은 정치 신인들이 개혁의지를 가지고 국회에 진출해도 선수(選數)를 내세우는 원로 의원들의 낡은 관행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이제는 획기적인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선거사범 사면 제한'도 필요 ▼
또 깨끗한 정치 신인들의 국회 진출 장벽도 허물어야 한다. 정치 신인들이 현역의원과 같은 자기선전의 기회를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역의원에게만 유리하게 돼 있는 의정활동보고회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또 선거에서 부정한 돈을 차단하도록 완전 선거공영제를 도입하고, 위법자는 주권침해사범으로 중벌에 처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법원도 선거사범을 법이 정한대로 1년 이내에 신속히 재판을 마치도록 강제해야 한다. 권력형 부정비리로 처벌받은 정치인과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사면 감형 복권을 제한 또는 금지하도록 사면법 개정도 필요하다.
자기반성에 충실한 사람만이 큰 개혁에도 충실할 수 있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