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돈이 펀드를 만들었더니 두 달 만에 650억원이 몰렸다고 해 꽤나 소란스럽다. 사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유머스러운 측면이 있다. 분명 대통령도 속상할 테고, 그렇다고 ‘권력 친인척이 주도하는 일’이라는 좋은 정보를 듣고 투자를 한 사람들도 나무랄 수 없는 형편이다. 돈이란 귀신같이 권력 주위로 몰린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법칙 아닌가.
어쨌든 이번 일로 인해 사돈도 저렇게 세다는 것이 ‘입증’된 상황이니, 대통령이 더 이상 ‘나는 약자’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시민의 정서나 감정은 항상 변한다. 92년 김영삼 대통령당선자 시절 대통령수석비서관에 내정 발표됐던 모 인사가 임명도 되기 전에 중도하차한 일이 있다. 표면적인 퇴진 이유는 다른 것이었지만, 그가 고졸학력이라는 점이 낙마의 실제원인 아니냐는 뒷공론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고위 공직자라면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정서가 꽤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선에서도 나를 포함해 우리는 대학출신이 아닌 상고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시민의 정서가 변해 학벌이나 권위가 아닌, 젊고 유머 있는 친근한 노무현이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놀라는 것은 후보 때 느꼈던 그의 유머가 이제는 더 이상 유머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은 “힘없는 대통령”이라느니 “대통령을 못해먹겠다”느니 하는 식의 말은 후보 때라면 분명 유머로 들렸을 것이나 이제는 그저 품위 없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편 가르기식 인사’, ‘코드 정치’라는 말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대통령 주변인사들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하나둘 현실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 대통령으로서 아름다운 힘과 권위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조용히 해인사를 찾아가 온돌방에서 노스님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눔으로써 사패산 터널 문제를 둘러싼 몇 년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대통령의 그 모습을 TV에서 보며 우리는 이기고 지는 승부의 감정을 떠나 그저 서로에게 고마운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대통령은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는 그런 어른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은 싫어도 한 가족일 수밖에 없다. 가족은 서로 듣기 싫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싫어도 들어야 한다. 더욱이 힘센 가장이라면 일부 가족이 싫다고 천도(遷都)를 해서라도 정리하겠다는 식으로 나가서는 정말 안 된다.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이 센 사람이다. 그런 만큼 견제와 감시의 ‘싫은 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사건과 같은, 권력과 돈이 수상하게 결합돼 문제를 야기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어른이 어린애와 씨름을 하면서 넘어져주는 것은 분위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이지 정말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러라도 넘어져 주는, 그래서 사람들을 훈훈하게 해주는, 옛날의 그런 유머를 노 대통령에게서 다시 듣고 싶다.
조유헌 월간 서울스코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