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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세이]한종우/‘공부 잘하는 운동선수’ 만들자

입력 | 2004-02-02 19:02:00


정선민 선수. 국내 최초로 여자 프로농구에서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 무대를 밟았던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다. 그가 미국에서 돌아와 필자에게 회고한 얘기가 인상적이다.

팀 내에서 비교적 친숙하게 지내던 미국인 동료선수가 하루는 자기에게 왜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운동만 하느냐고 다소 비아냥거리는 투로 묻더라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운동에만 매달리는 자기가 납득되지 않아 은퇴 후를 걱정해 주는 배려에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나친 표현에 무척 서운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그들이 지금의 운동생활을 어릴 때부터 해 온 활동의 한 성취일 뿐 항구적인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생소했다고 한다.

오늘날 인터넷 등 멀티미디어의 보편화로 온라인을 통한 정보 획득과 의사표현이 활발하다. 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팬클럽 조직과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선수와의 만남도 수월해지고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며 그에 따른 격려와 비판도 놀랄 만큼 날카로워졌다. 선수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지적인 능력도 높이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학원 스포츠는 어떠한가. 교육환경의 다변화, 학생수 감소, 재정난 악화 등의 어려워진 학교 여건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가 차지하는 정치·사회적 비중의 향상을 감안하면 예전보다 더욱 선수의 질적 능력 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선수육성, 관리, 소요 경비, 지도자 급여, 대회 참가비 등 거의 모든 것을 학부모가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도자는 어쩔 수 없이 학부모의 요구에 이끌려 수업은 뒷전이고 오로지 입상에 매달리게 된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빠진 느낌이다.

더욱이 한두 명의 자녀밖에 없는 신세대 부모들은 힘들고 어려운 데다 학습 기회마저 충분치 못한 운동선수의 길에는 아예 손을 내젓고 있다. 그러니 선수의 조기발굴과 저변확대는 고사하고 오히려 예전보다 선수 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물론 어려운 여건에서도 소신껏 수업 기회를 부여하고 훈련하는 의식 있는 지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소수가 아니라 대부분을 차지해야만 하고, 또 그런 풍토가 당연시돼야 하겠다.

2001년 미국 대통령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앨 고어 전 부통령과 경합했던 톰 브래들리 상원의원은 한때 NBA에서 대단한 활약을 했던 프로농구선수 출신이다. 정선민 선수가 보았던 미국 최고의 WNBA 선수들도 이렇듯 다양하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일반학생과 큰 차이 없는 학습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진정한 세계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려면 훌륭한 선수보다는 다양한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선수들이 다양한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학습 기회를 가능한 한 폭넓게 부여하고 트레이닝 시스템이나 프로그램도 환경에 맞도록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변화시키면 이전보다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반 위에서만 스포츠는 항구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이 기회에 태릉선수촌에 국가대표 학생 선수들을 위한 보충수업 계획을 마련했으면 한다. 학습결과를 소속 학교가 인정해주고, 자격 있는 교사와 교수를 선수촌이 자원봉사로 모집해 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해 본다.

한종우 국민체력센터 연구위원·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