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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함인희/`多世代 공조사회` 밑그림 있나

입력 | 2004-02-03 21:03:00


지난해 인구증가율이 0.32%에 머물면서 1974년 주민등록제도 실시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한다. 70년대 고속성장 기간 중 평균 2.30%라는 높은 출생률로 인해 인구과잉 압력에 시달려 온 우리로선 ‘꿈★은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까.

한데 꿈의 실현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문제인 모양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셋째 아이를 낳으면 교육비에서부터 아파트 분양에 이르기까지 각종 불이익을 줬던 정부가 이젠 셋째를 낳으면 양육비를 포함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회유하는 것을 보면.

▼출산파업-이혼율 급증-고령화 ▼

최근 5년여 사이에 우리의 인구학적 지표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베이비 스트라이크(출산 파업), 이혼율 폭증, 고령사회 진입 등의 3대 인구학적 반란이 우리의 일상에 ‘지독한, 그러나 정상적인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 3대 인구학적 반란 사이에 일정한 유기적 관계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앞선 세대의 이혼율 폭증이 출생률 감소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며, 고령화가 이혼율 증가에 기여한 측면 또한 나타날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분명 기억해야 할 것은 저출산이든 이혼의 규범화든 그레이혁명이든 ‘우리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기존의 고답적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더욱 오리무중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출산 파업은 출산 부양책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며, 고령화로 인한 노인부양 책임 역시 전통적 효 이데올로기나 (핵)가족 책임론에 기대어서는 곤란하다. 호주제의 명분을 위협할 만큼 이혼율 급증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라면 ‘전통적 가족가치의 회복’ 또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지 않겠는가.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 및 고령화를 동시에 경험해 온 서구에서는 이미 ‘인구과소 사회’에 대비한 정책을 준비 중이고, 고령화의 진전으로 인한 ‘다세대(多世代) 공존사회’의 밑그림을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더불어 예상되는 노동력 수급상의 불균형 및 부양비 부담의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 고령 인구 및 부양 개념을 둘러싼 획기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 시행 중인 동거 커플의 법적 인정이나 미혼모 개념의 폐지, 정년 개념의 연장 내지 유연화, 나아가 부양과 양육을 동시에 지원하는 세계 유수 기업들의 친(親)가족주의정책 등은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나타나는 노동시장 구조는 물론 양육과 부양 공동체로서의 가족 고유기능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서구의 선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을 것이다.

사족. 몇 해 전 우디 앨런 작 ‘Everybody Says I Love You’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을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내가 너 사랑하는 것, 다른 사람은 다 알아’였다는데, 현대사회는 분명 ‘사랑이 종교의 지위로 부상한 시대’인 듯하다. 한데 아이러니인즉 사랑이 삶의 핵심 화두로 등장한 시기와 출산 파업, 이혼 폭증, 그리고 부양 위기가 심화된 시기가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획기적 패러다임 전환을 ▼

이 역설 앞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성숙한 사랑’의 다양한 버전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곧 약자에 대한 보살핌과 배려를 담은 ‘사려 깊은(attentive) 사랑’을, 친밀성과 평등성을 결합한 일상에서의 ‘융합적(confluent) 사랑’을, 그리고 자기 발전과 상대에 대한 몰입을 결합한 ‘상호의존적 사랑’을 하자고 한다.

정월 대보름 명절의 정취가 사랑을 독점한 세대의 밸런타인데이 위세에 눌리는 요즈음 진정 ‘성숙한 사랑’의 질박한 맛이 그리워진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