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還甲)에 한글 공부를 시작해 고희(古稀)에 대학에 입학한 셈이죠. 외우자마자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는 영어 단어와 난수표처럼 까다로운 수학 문제가 그토록 나를 괴롭혔는데…."
4일 오전 10시 반 대전 평송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대전예지중고교(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졸업식. 졸업생 189명 가운데 최고령인 류정례 할머니(71)가 박수를 받으며 졸업장을 받았다.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류씨는 환갑을 맞은 1994년 대전주부학교 한글 초급반에 입학, 공부를 시작했다. 1997년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마치고 곧바로 대전예지중고교에 입학했다.
일제시대 잠시 초등학교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인 류 할머니에게 공부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남편과 어렵사리 생계를 이어가며 5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농사일과 삯바느질에 매몰되다시피 살아온 인생이었다.
류 할머니는 6년간 중고교를 다니며 남편이 작고했을 때를 제외하곤 한번도 수업을 거르지 않았다. 수업 시작 1시간여 전인 오전 8시경 어김없이 교실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귀를 쫑긋 세웠다.
담임 김남진(金南珍·영어) 교사는 "약간의 시력 장애로 칠판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짝궁의 노트를 옮겨 적고 그것도 모자라면 집으로 노트를 빌려가곤 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류 할머니를 위해 여러 차례, 그리고 방법을 달리해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류 할머니는 이런 선생님들에게 종종 껌과 요구르트 등 '애교성 선물'을 하기도 했다.
류 할머니는 일제시대 초등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여자 친구들이 남편과 같이 대학을 다녔다는 얘기를 듣고 '시샘'이 발동한 것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 류씨의 남편은 결혼 직후 대학에 다녔다.
방송대 일본어학과에 지원해 3월부터 대학 생활을 하게 되는 류 할머니는 "국제행사가 있을 때 언어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서 "6년 개근상을 받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날 졸업식에서 이 학교에서 개근상에 이어 가장 소중한 상으로 생각한다는 학교장상을 류 할머니에게 줬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