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큐잭은 인디 영화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를 오가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흔치 않은 배우다. 생각보다 출연작이 매우 많은데 그의 필모그래피(출연작 목록)는 의미 있는 작품들로 빼곡하게 차 있다.
영화 한 편 출연에 2000만∼3000만달러를 받는 A급 빅스타는 아니지만 관객들이 절대 무시하지 않는 배우가 바로 그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콘 에어’ ‘아메리칸 스윗하트’ ‘세렌디피티’ 같은 영화보다는 마니아급에 해당하는 ‘그로스포인트 블랭크’ ‘그리프터스’ ‘존 말코비치 되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등이 작품성 면에서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마도 그건 큐잭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예술과 대중 흥행은 늘 비껴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의 신작 ‘런 어웨이’는 어느 지점에 있는 영화일까.
요즘 들어 살짝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가는 존 그리샴 원작인 데다 20세기폭스가 배급하는 작품인 만큼 그의 골수팬들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관객들을 위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원작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등장인물의 관계는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하다. 하지만 감독 게리 플레더는 주인공인 큐잭과 그의 애인 역인 레이철 와이즈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느라 드라마 전체를 조금 단순화시킨 느낌이 든다.
큐잭은 총기회사라는 미국 내 굴지의 기업에 제기된 법정소송에서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한 소시민으로 나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유약해 보이는 지식인 청년이 배심원단을 좌지우지하며 소송을 주도해 나가는 배후인물임이 드러난다. 이때부터 영화는 큐잭과 총기회사를 옹호하는 변호사 진 해크먼의 치열한 두뇌싸움으로 전개된다.
법정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다소 약한 줄기의 이야기겠지만 마치 바둑을 두듯 ‘수 싸움’을 벌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 만점이다.
큐잭의 매력은 무조건 선과 악의 대립각을 뚜렷이 그리려고 애쓰는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내면의 자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위기의 지식인 상을 연기하되, 그게 결코 ‘스노비시(snobbish·지식인연하는, 하지만 사실은 속물근성인)’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연기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솔직히 들 정도다. 약간 처진 눈매에다 이제 40줄에 다가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안(童顔)인 얼굴 때문인지 종종 진부하고 상투적인 역할을 맡더라도 늘 진정성이 배어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는 얼마 전 타계한 연극인이자 작가인 아버지 딕 큐잭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누나인 조앤 큐잭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자 가족을 이루고 있다.
1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