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우수 인력의 이공계 기피가 과학기술 경쟁력을 떨어뜨려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가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임시방편만 쏟아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본보는 ‘과학기술이 희망이다’ 시리즈 1부에서 다양한 분야의 이공계 출신 인사들을 통해 이공계의 현실과 과제를 소개했다. 1부를 마무리하면서 이공계 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들어보는 좌담회를 2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2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국양(鞠樑)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김인수(金寅洙) 삼성전자 인사팀장(부사장), 박석재(朴碩在) 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정진화(鄭眞和)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사회는 신연수(申然琇) 이공계시리즈 팀장이 맡았다.》
#핵심은 고급 과학기술인력 부족
▽사회=이공계 위기가 과장되거나 잘못 알려져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위기의 본질을 진단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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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부사장=이공계 인력이 너무 많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공급 초과로 노동시장에서 이공계 인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지요. 이공계 인력은 넘쳐나지만 정작 기업에 필요한 핵심 우수인력은 부족해 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공계 인력은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입니다.
▽정진화 연구위원=한국의 대졸자 중 이공계 졸업자의 비율은 4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4위입니다. 인구 10만명당 이공계 학사도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비해 많고, 박사도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이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 거죠.
▽국양 교수=보통 이공계 위기를 말할 때 수학능력시험 점수를 드는데 수능 점수가 학생들의 능력을 정확히 대변하는 건 아니죠. 다만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경우 예전엔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 50명 중 7, 8명은 있었는데 요즘은 피부로 느낄 만큼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공계 위기가 과장돼 학생들이 이공계를 더욱 꺼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박석재 연구원=정부출연연구소 사람들은 4∼5년마다 올림픽 치르는 기분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소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천문연구원의 경우 처음엔 국립천문대였다가 전자통신연구소 부설이 되었다가, 표준과학연구원 부설이었다가 다시 국무조정실 산하 천문연구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소속과 업무를 계속 바꿔서야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년도 교수는 65세인데 연구원은 61세입니다. 당연히 대학으로만 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김=삼성전자는 연구개발인력이 전체 인원의 35% 정도인데 그들이 받는 급여는 전체의 50%를 넘습니다. 이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많아 오히려 인문사회학을 전공한 직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이공계는 무조건 전망이 없다는 식의 위기론은 사실과 다릅니다.
▽정=일부 대기업은 대우가 좋겠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공계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 되는 겁니다. 몇몇 스타는 상당한 대우를 받지만 중소기업 종사자 등 나머지는 전망과 대우가 나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의대 치대 한의대는 기본적으로 안정되고 고수입이 보장되니까 우수 인력이 몰리는 겁니다.
#정부, 대증(對症)요법으론 안 된다
▽사회=최근 정부가 이공계 지원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장학금과 병역특례 등 지원책은 ‘국가와 정부가 이공계에 관심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유인책이지요.
그러나 최근 미취업자를 구제하는 등 실업대책과 뒤섞이면서 이공계 정책이 변질된 측면이 있습니다.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와 실업자 구제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공계 실업을 줄이려고 억지로 취업을 유도하면 오히려 이공계 위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김=장학금을 준다고 이공계를 가지는 않습니다. 의대는 공대보다 등록금이 훨씬 비싼데도 의대를 가려는 학생이 넘쳐납니다.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다른 길로 빠지면 무슨 소용입니까.
대학생보다는 현재 이공계 종사자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이공계를 나와 과학기술 자의 길을 가는 데 대한 인센티브와 비전을 제시해줘야 합니다.
또한 첨단 기술인력을 양성해야지 평범한 이공계 인력의 취업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곤란합니다.
▽국=미국 노동부 통계를 보면 엔지니어로 분류되는 인원이 의외로 적습니다. 이공계 출신 가운데서도 과학기술 인재로 성장하는 사람과 일반직으로 가는 사람을 정확하게 분류한다는 얘기지요.
▽김=이공계 문제는 과학기술경쟁력의 위기, 산업경쟁력의 위기로 봐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저부가가치, 저기술의 산업구조로는 중국과 동남아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환의 매개체가 바로 우수 이공계 인력입니다. 이공계 대학을 활성화하고 실업자를 취업시키는 것은 유인책은 되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과학기술경쟁력을 국정 최고 과제로
▽박=과학에 흥미를 갖고 과학기술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작년에 화성이 6만년 만에 지구에 가장 가까이 다가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수도권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손을 잡고 그걸 보러갈 만한 시민천문대가 하나도 없습니다. 일본에는 시민용 천문대가 300개나 있지만 한국은 대전 영월 김해 등 세 곳뿐입니다. 한국의 풍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죠.
▽국=지식을 자본으로 여기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기업이 연구개발자에게 봉급 더 주는 것을 ‘안 줘도 되는 것을 주는 양’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연구소와 연구원을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지금도 외국 기술을 들여와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하려고 하죠. 그러다보니 대기업 연구소장을 쉽게 갈아 치우고 그들에 대한 대우를 ‘시혜’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정=시장원리에 어긋나게 너무 늘어난 대학들이 구조조정돼야 합니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사라져야 합니다. 또 대학들이 연구 중심 또는 현장 엔지니어 중심 등을 특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과 기업의 교류는 필수입니다.
▽국=영국 TV방송은 오후 8시 황금 시간대에 과학프로그램을 방영합니다. 과학이 재미있고 과학기술을 배우면 평생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저는 가장 자괴감을 느낄 때가 “이공계 출신들이 자식은 이공계 안 보낸다”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제 자식은 이공계 간다고 하고 저도 지원할 생각입니다.
▽박=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패배의식도 고쳐야 합니다. 영화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외계인을 추적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외계인을 추적하면 다들 웃겠지요. 좋은 국산 SF영화를 만드는 것도 방법입니다. 창의적 과학교육과 교사들에 대한 프로그램 마련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김=한국은 부존자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인적자원과 높은 교육열뿐입니다. 이를 잘 활용해 첨단기술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국가 최고경영자(CEO)가 과학기술을 국정의 최고 과제로 삼아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꾸준히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좌담회 참석자▼
국 양=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김인수=삼성전자 인사팀장(부사장)
박석재=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정진화=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회:신연수 본보 이공계시리즈 팀장
▼특별취재팀▼
▽팀장=신연수 경제부 기자(차장급)
▽경제부=이은우 김태한 고기정 박용 기자
▽사회1부=전지원 기자
▽동아사이언스=김훈기 이충환 기자
※과학기술과 이공계 문제에 대한 제보와 의견을 기다립니다.
전화 02-2020-0823 e메일 ysshin@donga.com
기업 대학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현재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고 대학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정진화 박석재 김인수 국양씨. -김미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