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법정에 선 여성들은 법원의 가부장적인 의식에 상처받고 판결 결과에 실망하는 일이 많다. 이혼소송이 제기되면 남편은 보복수단으로 생활비를 끊어 버린다.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존해 오던 여성은 아이들과 함께 생계의 고통에 직면하고, 가정폭력을 피해 친척집을 전전하는 경우도 있다. 법원은 이런 처지의 여성과 아이를 위해서 어떤 보호책을 주고 있을까.
▽이혼법정 가부장적 판결 여전▽
가사소송법에서 관계인의 감호와 양육을 위한 임시조치의 일종인 ‘사전처분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제도는 있어도 정작 법원은 이를 활용하는 데 인색하다. 법원이 소송 중에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도록 남편에게 명령하는 경우는 일부에 해당하며 액수 또한 평소 금액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 버린다. 배우자의 생활비를 인정하는 경우는 아프거나 나이가 많아 자력이 없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의 주부는 ‘나가서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생활비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주부로 지낸 여성이 이혼소송과 동시에 쉽게 직업을 구해 돈을 벌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남편의 귀책사유를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아내에게 생활비 중단이라는 남편의 보복을 법원이 왜 정당화해 주는가. 생활비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남편이 평소 지급하던 금액을 법원이 무조건 감축하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법원의 이런 입장은 계속되고 있다.
60대인 김모씨가 남편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남편은 생활비를 중단해 버렸다. 남편은 고소득자이며 모든 재산을 자신 앞으로 해 놓고 아내에게는 매달 적은 생활비를 지급해 왔다. 김씨가 생활비를 달라는 사전처분을 신청하자 재판장은 김씨에게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방이 몇 개냐”고 물었다. 김씨가 “3개”라고 말하자 재판장은 “방 한 칸을 월세 놓아 생활비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법원의 이런 시각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들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혼사유를 판단하고, 위자료를 결정하고, 재산분할 비율을 산정하는 잣대에도 어김없이 가부장적 시각이 크게 작용한다. 이혼판결문에 “시누이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집안 대소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내용을 위자료 감축 사유로 삼은 경우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시누이에게까지 순종을 요구하는 판결문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같은 언어폭행이라도 여성이 한 경우와 남성이 한 경우에 대한 법원의 시각이 다르다. 아내가 남편에게 욕설을 한 경우에 법원은 “부부 사이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했다”고 하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라고 판시했다. 반면 남편이 아내에게 언어폭행을 상습적으로 자행한 경우 언어폭행만을 이혼사유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법원은 또한 아내에게 참을 것을 요구하고 남편의 상습적인 외도와 폭력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한 아내에게 ‘참지 아니한 잘못’이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위자료 참작 사유로 삼는다.
▽‘여성 차별’ 법적용 이젠그만▽
모든 재산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 상태에서 여성이 이혼청구를 기각당한 경우는 비참하다. 아내는 이혼소송을 통하지 않으면 재산분할을 받을 길이 없다. 그런데도 남편의 유책사유를 이유로 이혼 및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한 아내에게 “재산분할을 노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면서 여성에게 적대적인 표현을 사용한 판결문도 나오고 있다. 재산분할비율에서도 법원은 아내의 가사노동이나 사업체를 내조한 아내의 기여도를 낮게 평가하고 있다.
법원의 이러한 가부장적인 의식은 이혼법정에서 여성에게 아주 불리하게 작용하며 여성을 차별하고 억울함을 주는 결과를 종종 초래한다. 이혼법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소송 당사자인 여성의 개인 문제로 폄훼할 수 없다. 우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우리의 인권수준을 반영하는 문제다. 법원의 가부장적 의식은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baena@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