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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석연/낙천운동, 과연 객관적인가

입력 | 2004-02-05 19:23:00


바야흐로 시민단체의 총선 참여를 둘러싸고 백가쟁명이 시작되고 있다. 대선자금의 굴레에 얽매여 이미 초토화된 정치권은 스스로의 개혁의지와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판을 변혁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을 업고 시민단체가 직접 총선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총선시민연대, 환경연대, 여성연대, 파병반대국민행동 등의 낙천·낙선운동, 총선물갈이국민연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등의 당선운동, 노사모가 주축이 된 국참0415와 보수단체가 중심이 된 바른선택국민행동의 당선운동 등…. 앞으로 더 많은 단체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총선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혁명 전야의 분위기마저 감돈다.

▼시민운동의 성과 무너뜨릴수도 ▼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이런 정치 과열 현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시민단체가 무슨 권한으로 심판자 역할을 하는가’, ‘당락 대상자의 선정에 정치적 저의는 없는가’, ‘동일인을 단체에 따라 당락 대상자로 달리 발표하니 헷갈린다’는 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고비용, 저효율, 비능률과 지역분할구도로 상징되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 극복 없이 선진사회로의 진입은 요원하다. 기업 활동을 옥죄고 있는 최근의 대선자금 사태에서 보듯 아직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다시피 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정치 과정의 공정·적법성 여부는 국가 성패의 관건이다. 시민단체가 정치개혁에 그 역량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필요와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 전개되는 ‘너도나도’식 낙천·낙선, 당선운동과 관련해선 몇 가지를 심각하게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낙천자, 당락대상자 명단 발표 외에 선거 현장의 낙선 또는 당선운동은 공직선거법상 금지돼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본격적인 당락운동을 하려면 위 금지조항부터 개정해야 한다. 필자는 낙선운동 처벌조항은 삭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낙선운동 허용 여부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팽팽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현행 낙선운동 금지조항을 합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법을 위배한 선거운동은 아무리 그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합리성과 타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원리다.

다음 시민단체의 활동은 공익성과 비정파성을 바탕으로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 대안제시를 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따라서 제도 개선 등 개혁과 변화를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균형적인 시각하에 객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총선운동 과정에서 이런 기준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자칫 특정정파 내지 정권 지지운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정치적 편향성을 지닌 일부 단체의 서포터스 운동과 시민단체의 총선 운동은 구분돼야 한다.

만일 시민운동이 정치적 지지운동으로 오해받거나 변질될 경우, 정치개혁의 참뜻이 반감되면서 시민단체가 그간 쌓아온 성과와 노력마저 빛이 바랠 것이다. 권력이 시민운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발상을 버려야 함은 물론이고, 시민단체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엄격한 자기관리와 사명의식도 요구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시민운동은 키워나가야 할 영속적 대상이다.

▼인위적 청산보다 새 정치 키워야 ▼

당락자 선정기준과 관련해 예컨대 대북, 대외정책이나 특정 국책사업 등을 둘러싸고 시민단체의 이념과 다르다고 하여 낙천·낙선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고 본다. 이 경우 충분한 정보 제공만 하고 궁극적으로는 유권자의 양식에 맡겨야 할 문제다.

오늘날 정치권의 부패상과 위기적 상황은 정치인뿐 아니라 그들을 뽑은 유권자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인위적 청산운동보다 새로운 정치문화 조성을 위한 유권자 각성운동이다. 유권자가 반성하고 깨어 있어야 정치가 살고 나라가 바로 선다. 유권자의 수준이 결국 그 나라의 정치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석연 변호사·전 경실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