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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텔레코즘'…'텔레코즘 유토피아' 한국이 이끈다

입력 | 2004-02-06 17:28:00


◇텔레코즘/조지 길더 지음 박홍식 옮김/460쪽 1만8000원 청림출판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한다. 마주앉은 아내와 아이들도 음식을 집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정겨운 가족의 저녁 풍경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마주앉은’ 것은 호텔 객실의 대형 모니터다. 집에 있는 가족들도 식탁 위에 놓인 모니터를 통해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서 쉽게 마주치는 광경이다. 그러나 왜 이런 풍경은 아직도 낯설까. 그것은 동시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 즉 ‘대역폭(帶域幅·Bandwidth)’의 제한 때문이다. 인터넷 동영상이 자주 끊기는 데서 보듯이, 지금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대용량의 정보를 전달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89년 저서 ‘마이크로코즘(Microcosm·소우주)’에서 마이크로칩 혁명이 불러온 새로운 시대의 풍요를 예견했던 저자는 이제 동력혁명, 마이크로칩 혁명에 이어지는 ‘제3의 풍요’시대를 내다본다. 그것은 바로 정보 전송 속도의 풍요, 즉 ‘대역폭’ 풍요의 시대이며 ‘텔레코즘(Telecosm·원격우주)’의 시대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유한자산’인 대역폭은 곧 ‘무한자산’으로 탈바꿈한다. 2003년 꼬박 하루 걸려 나를 수 있던 1페타비트(1000조 비트)의 정보량을 1초에 나를 수 있는 날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 그것은 광섬유망 및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개발이 가져올 새로운 정보혁명이다.

광섬유 한 가닥이 현존하는 모든 무선통신정보를 합한 것보다 수천 배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약하고 넓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CDMA기술은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한 무한한 전파대역을 정보전달 통로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기존에 TV방송사 하나가 차지했던 정보 전송량의 수천 배를 개개인이 누릴 수 있게 되면서 누구나 24시간 인터넷에 접속한 가운데 고정밀 화상과 음성으로 정보를 송수신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

저자는 1980년대 저서 ‘부와 빈곤’으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주인공. 뒤늦게 정보혁명에 눈을 떠 이 시대의 대표적 미래학자 반열에 들게 된 그는 당연히 이 새로운 정보혁명의 산업적 가치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산업혁명기에 ‘에너지’의 가격폭락이, 마이크로칩 혁명기에는 반도체의 가격폭락이 산업계와 세계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이처럼 앞으로의 세상은 ‘대역폭을 아낌없이 쓰는 법을 배우고 이에 따라 다시 세계를 재건축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모든 개개인의 컴퓨터에 오늘날과 같은 중앙처리장치(CPU)와 하드디스크가 들어 있을 필요는 없다. 빠르고 값싼 광전송망을 이용해 먼 곳에 있는 중앙컴퓨터에 정보 처리와 저장을 맡기고 개개인은 ‘단말기’만 갖고 다니면 된다.

이 새로운 정보혁명기에 한국이 가진 가능성을 저자가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CDMA기술을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상용화했고, 초고속인터넷이 가장 광범위하게 보급된 한국은 현재 ‘텔레코즘 유토피아’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사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유리와 빛으로 만들어진 새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한국이여, 기회를 움켜잡아라.”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