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곳 캘거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캘거리에는 한국 교민이 8000여명밖에 안 된다. 특별한 재주가 없던 필자는 이것저것 모색하다가 음식점을 열어 생업으로 삼게 됐다. ‘캐나다 스타일’의 음식을 만들어 캐나다 사람들에게 파는 일을 시작한 것이 10여년 전의 일이다.
단순히 캐나다 스타일의 음식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불고기 등 간단한 한국음식을 메뉴에 끼워 넣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 즈음 이곳에는 중국식, 일본식은 물론 베트남식, 태국식 음식점이 속속 생겨났다. 하지만 한국식은 몇 안 되는 한국교민을 상대로 한 음식점이 한두 개 있을 뿐이었다. 한국음식은 조리과정이 복잡하고 냄새가 강해 서구인을 상대로 해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달랐다. 몇 년간 음식점을 해 본 결과 한국음식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기왕 캐나다 사람들을 상대할 바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하리라 마음먹고, 2년여의 준비 끝에 98년 ‘고려’라는 상호의 한국식 패스트푸드점을 열었다. 불고기 갈비 등을 ‘주(主)요리’로 하고, 밥과 김치 등 반찬을 ‘부(副)요리’로 서비스하는데 이곳 지역신문과 잡지에 ‘추천할 맛집’으로 소개될 만큼 꽤 인기가 있다. 중간에 자금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지금 ‘고려’는 쇼핑몰 음식코너의 여타 동양 음식점들이 입점을 견제할 정도로 ‘유망한 프랜차이즈’라는 인식을 심었다.
이곳에도 건강식생활 바람이 불면서 각종 김치를 찾는 사람이 많다. 서양 사람들은 마늘 냄새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마늘이 듬뿍 든 김치를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김치를 먹은 뒤 껌을 씹어서 냄새를 없애는 재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불고기와 갈비다. 불고기를 먹으면서 “입에서 녹는다”고 말할 정도다.
이를 보면서 한국적인 것도 세계화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와 동시에 세계화는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절감한다. 말이 그렇지, 캐나다 사람들이 한국음식을 찾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최대의 문제는 고객과 종업원 관리다. 캐나다 사람들은 잠깐 음식을 사거나 먹는 동안에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꼭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서비스업을 하려면 손님에게 몇 마디 가벼운 얘기를 던지며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또 종업원은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한국식으로 아랫사람 대하듯 하면 반드시 갈등이 생긴다.
이를 ‘사소한’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친다. ‘캐나다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종업원 관리를 하다가 결국은 사업에 실패하는 한국교포들이 적지 않다. 무조건 외국으로 나간다고, 무조건 한국을 내세운다고 세계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계화는 현지의 문화에 대한 이해, 즉 현지화와 결합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이진호 캐나다 캘거리 거주·레스토랑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