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궁’ 양미경씨의 남편 허성룡씨는 “인기가 높아졌다 해도 미경이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며 “결혼한 지 16년쯤 되니 이제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서로 안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MBC 드라마 ‘대장금’의 한상궁 역으로 연기생활 20여년 만에 스타덤에 오른 탤런트 양미경씨(43). 양씨는 “두 남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씨의 두 남자는 KBS 드라마PD 출신인 남편 허성룡씨(50·우림해운 전무이사)와 외아들 진석군(16). 허씨는 “특별하게 도와준 것 하나도 없다”며 “진석이나 나나, 미경이가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하고, 자기 일 하는 데 간섭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울산이 고향인 이 ‘경상도 사나이’는 특별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외조’가 한국 남자로 살면서 어디 쉬운 일인가.
“전 식성이 좋아 아무거나 잘 먹고, 집도 어질러놓지 않는 편이고요. 또 내가 PD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시시콜콜 묻지 않아도 대충의 흐름을 잡고 있죠. 미경이가 어떤 장면 촬영이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찍을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있어요.”
남편은 안 보는 척,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아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지금껏 아내의 촬영 현장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 연기에 대해서도 가급적 말을 아껴왔다. 아내의 경우, 스스로 느껴서 연기하도록 편안하게 놓아두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한상궁의 인기 요인도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한상궁 캐릭터와 미경이의 품성이 매우 유사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겁니다. 또 미경이는 상대 배우에 꽤 부담을 느끼는 편인데 이영애씨는 참 편안해했어요. 다음으로 이병훈 감독이 미경이의 결점을 잘 파악하고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잘 이끌어줬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들이 상승효과를 일으켜 미경이가 연기를 잘 할 수 있었겠죠.”
1983년 KBS 입사동기인 이들 부부의 연은 드라마를 통해 맺어졌다. 87년 KBS 가요드라마 ‘바람 바람 바람’ 촬영 현장인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 자전거 타는 장면을 찍기 위해 한쪽에서 연습하던 양씨가 그만 한강에 빠지고 말았다. 몸을 날려 양씨를 구조한 사람이 당시 허성룡 AD. 그러나 이 ‘한강 사건’이 결정적 계기는 아니었다.
6개월 후 허씨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MBC 드라마에 출연한 양씨를 인상 깊게 본다. 한상궁처럼 양씨에게 잘 맞는 역할이었다. 바로 다음날 방송국 로비에서 각기 촬영대기 중이던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이상하게 그날 둘 다 촬영이 계속 지연되더라고요. 기다리면서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 이 배우가 작품을 보는 나름의 시각과 눈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 뒤 매일 만나다시피하다 6개월 만에 결혼했죠.”
‘대장금’으로 큰 인기를 얻은 뒤 앨범표지 촬영, 악극 출연 등으로 쉴 새 없이 바쁜 아내가 안쓰러울 뿐이다. “미경이는 뜨개질, 책읽기, 잠자기를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잠을 못 자니까…. 요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전화해서 ‘밥 먹었느냐, 잘 챙겨 먹어라’고 얘기하는 것밖에는 없어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양미경씨가 보는 나의 남편
양미경씨는 “진석 아빠는 뚝배기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야외촬영 하다 쉬는 시간에 잠시 집에 들르면 왜 거기서 쉬지 않고 집에 왔느냐고 그래요. 제가 식사 준비를 하면 진석 아빠가 빨래하고 진석이는 걸레질을 해요.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것들을 일하는 아내와 엄마의 몫으로 미뤄 놓으면 더없이 힘들어지잖아요.”
양씨는 남편이 무심한 척하면서도 은근슬쩍 한두 마디 조언이나 충고를 던진다고 했다. 이런 말들이 양씨에게는 ‘버팀목’이 된다.
‘한상궁’으로 인기가 치솟고 인터넷에 팬 카페가 생겼을 때 남편은 양씨에게 “팬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빡빡한 촬영 일정 탓에 “힘들다”고 투정이라도 부리면 “배우가 감수하고 이해해야 하는 부분을 잊지 말라”고 전직 연출자답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상궁’의 죽음 이후 제가 ‘대장금’에 출연하지 않는 요즘도 진석 아빠는 드라마 대본을 꼼꼼히 읽어요. 그리고 지나가는 말처럼 ‘이번 주 회상 장면에 너 나오더라’ 그래요.”(웃음)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