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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알권리 내세워 사생활 침해없어야

입력 | 2004-02-06 19:29:00

‘김병현 사건을 계기로 살펴본 프라이버시권 보호와 취재보도’를 주제로 좌담하는 독자인권위원들. 왼쪽부터 이종왕 위원, 이용훈 위원장, 양창순 위원, 김영석 위원. -박주일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POC·Press Oversight Committee) 위원들은 공인이라 하더라도 프라이버시(사생활)권에 관한 보도는 국민이 알아야 할 충분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미리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위원들은 제13차 정기회의가 열린 5일 ‘김병현 사건을 계기로 살펴본 프라이버시권 보호와 취재보도’를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부당하게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선정적 보도를 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우리 주변에서 사생활 침해가 숱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국민과 언론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면서 관계법령 개선과 공권력 집행과정에서 사생활권이 우선적으로 보호되도록 언론이 앞장서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도와 관련해 언론이 김병현 사건에서 되짚어 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이용훈 위원장=사생활권과 언론자유는 모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입니다. 문제는 두 기본권이 충돌할 때 생겨납니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관계없는 공인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기자가 감시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사진촬영에 대한 김병현 선수의 항의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카메라를 부수고 폭행하는 등 이후의 과잉대응은 사생활권과 관련 없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지요.

▽양창순 위원=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가학성 쾌락증이나 관음증이란 인간본능에서 자유로운가 반성해 봐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접근하거나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사생활 보도도 문제가 되겠지요.

▽김영석 위원=김병현 선수의 경우 공적 인물이므로 공익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프라이버시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공익을 내세워 상업주의적 보도를 하지는 않는지 조심해야 합니다. 김병현 사건의 경우 취재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미리 양해를 얻거나 신분을 밝히고 취재에 나서는 편이 바람직했다고 봅니다.

▽이종왕 위원=청렴성이 요구되는 감사원장이 백화점 호화쇼핑 등 사치를 일삼는다면 사생활이라도 공개돼야 마땅합니다. 반면 공인이라도 배우가 그런다면 보도하지 않아도 그만입니다. 사생활권과 표현의 자유가 상충될 때에는 공공의 이익, 공익성을 위한 것인가, 국민이 알아야 할 정당성과 상당성이 있는가를 따져 보면 보도기준은 저절로 나온다고 봅니다.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 공인의 프라이버시권과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할 때 언론이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얘기해주시지요.

▽김영석=공인이든 사인이든 동의가 있다면 프라이버시 보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인과 달리 공인은 본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프라이버시에 대해 보도할 수 있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충분하고도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용훈=공인이라도 공적 역할에 따라서 보도의 잣대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아침 기상시간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연예인이라면 몇 시에 일어나든 상관없겠지요. 공적 생활과 상관성이 있는 사생활만이 취재대상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이종왕=대통령의 건강문제는 비록 사생활의 영역이지만 국정 수행과 관련해 중요한 사안이므로 마땅히 보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부부생활까지 국민이 알 필요는 없겠지요.

▽양창순=국민이 생존이나 안전, 그리고 사회적 안녕을 위해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공인의 사생활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하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알 권리를 내세우지는 않는지 유의해야 합니다.

―몰래카메라, 폐쇄회로TV, 휴대전화 위치추적, 인터넷 e메일 사용조회 등 첨단기술의 발달과 사회적 감시체제의 확산으로 위협받고 있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이용훈=개인의 사생활이 지나치게 공개되고 동의하기 어려운 사회감시 시설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만으로 사생활 정보가 엄청나게 노출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해 법원에 구제 요청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개인이 편안한 사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언론이 사생활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고 봅니다.

▽이종왕=휴대전화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노출되기도 합니다. 법관의 영장 없이도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통화 명세를 내주게 돼 있습니다. 개인의 행적이나 사적인 관계 등이 마구 쏟아져 나올 수 있지요. 개인의 금융계좌마저 적절한 통제 없이 추적되고 있는 것이 과연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정당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김영석=개인보다 집단, 집단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던 유교적 사고가 상존하는 실정입니다. 학생들에게 부모의 직업과 소득수준, 차량보유 현황에 이르는 개인의 사생활 정보까지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풍토 아닙니까. 정보화사회가 진전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여지가 너무도 많으니 언론이 앞장서 공론화하고 감시하고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이용훈=프라이버시권 보호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확산되도록 하고 미비한 법령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는지 언론이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 공권력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체제가 되도록 언론이 앞장서 노력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사회=이영근 전문위원

정리=김종하기자 1101ha@donga.com

▼김병현 선수의…▼

동의없는 촬영에 몸싸움

미국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병현 선수가 지난해 11월 8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던 중 자신의 허락 없이 사진촬영을 시도한 굿데이신문 사진기자와 물리적 충돌을 빚고 카메라를 부쉈다. 이 사진기자는 김병현을 폭력 및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했고 김병현은 기자가 신분을 밝히지도 않은 채 촬영을 강행하고 이에 항의하는 자신을 모독했다며 정면 대응했다. 양측의 대립이 팽팽하게 계속되다 김병현이 지난달 26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기자도 곧바로 고소를 취하해 사건은 종결됐다.

▼참석자명단▼

이용훈 위원장(李容勳·전 대법관)

이종왕 위원(李鐘旺·변호사)

김영석 위원(金永錫·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양창순 위원(楊昌順·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