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5년만에 한국 여자농구의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변연하. 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김미옥 기자
누구에게나 변신은 어렵다. 그만큼 두려움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변신을 시도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여자프로농구 선수 변연하(24·삼성생명). 지난달 16일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중국전에서 종료 2.6초를 남기고 동점 3점슛을 터뜨렸던 주인공. 그는 연장전에서도 코트를 휘저어 한국이 2년8개월 만에 중국을 꺾는 일등공신이 됐다.
변연하가 삼성생명에 입단한 것은 1999년. 당시 삼성생명 정태균 감독(현 국민은행감독)은 예언처럼 한 마디를 했다. “두고 보십시오. 전주원 이후 최고의 가드가 될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 대회는 전주원에겐 고별무대. 임신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 더 이상 코트에 남아있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변연하는 국가대표팀의 차세대 핵심멤버로서 자리를 굳혔으니 5년 전 정 감독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나 할까.
“농구할 때도 화장을 하냐구요? 어휴 그 질문은 너무 많이 들어서…(결국 노코멘트).” “예전엔 바니(토끼캐릭터)를 닮았다고 ‘바니공주’였는데 요즘은 그냥 ‘공주’로 불려요.” “저보고 3점슛 대가라고요? 성공률은 다른 선수와 비슷해요. 단지 저는 안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3점 슛은 자신감일 뿐이에요.” “경기 전에는 꼭 샤워를 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야 몸이 산뜻해 경기도 잘 풀리거든요. 사실 경기 전 인터뷰를 하면 잘 안 풀리는데….”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생명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즐겁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꾸밈없고 밝은 인상 그대로였다.
부산 해운대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변연하는 중학교 때까지 센터. 초등학교 4학년 때의 키가 1m60이었고 졸업 할 때는 1m72까지 자라 센터를 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포지션은 동주여상에 입학하면서 바뀌었다. 당시 차명신 코치가 가드로의 변신을 주문한 것.
“그 때 제 키가 1m76이었어요. 차 코치님은 실업팀에 가서 센터를 하기에는 키가 작은데다 볼 감각이 좋으니 가드를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당시에는 차 선생님 권유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변연하는 포지션을 바꾸면서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센터와 가드는 플레이 스타일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슛과 드리블은 물론 각종 기술도 새로 배워야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그 때마다 차 선생님이 실업 팀에 가서 변신하려면 너무 늦다며 힘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그의 키는 1m80에서 멈췄다. 외국인 용병까지 뛰는 성인무대에서 센터를 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키. 결국 그는 성공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 셈이었다.
변연하의 변신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초고교급 선수로 불리며 삼성생명에 입단한 뒤 99년 겨울리그 신인상, 2001년 겨울리그와 2003년 여름리그에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3점슛과 기습적인 골밑돌파는 국내에서 최고.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있으리라는 게 농구인들의 평가다.
그는 지금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리금융그룹배 2004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 그는 가드가 아닌 포워드로도 뛰고 있다. 삼성생명 박인규 감독과 정미라 코치는 그에게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의 역할까지 주문하고 있다. 올라운드 플레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 박 감독은 “포워드로서의 파괴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주득점원이 될 선수”라고 말했다.
변연하의 결심도 단호하다. “프로는 모든 상황에 대처해야 합니다!”
그는 코트 밖에서도 변신을 시도 중이다. 올해 경기대 체육학과에 입학한 게 그 첫 시도. 농구선수를 그만둔 뒤 그의 꿈은 체육교사와 교수다. 지금부터 그 준비에 들어간 셈. 변연하는 그만큼 당찬 선수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변연하는 누구▼
△1980년 3월7일생
△부산 해운대초등학교 동주여중 동주여상졸업
△1999년 삼성생명 입단
△혈액형 O형
△연봉 1억원
△취미 인터넷, 영화보기
△좋아하는 농구선수 강동희(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