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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화석…“발자국 만으론 ‘한반도 조상’추정 무리”

입력 | 2004-02-08 18:52:00

5만 년전 구석기시대의 사람 발자국과 동식물 화석들이 대거 발견된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상모리 및 안덕면 사계리 일대 해안을 조사단원이 둘러보고 있다. 당시 이곳은 해안이 아니라 호숫가나 숲이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제주=뉴시스


5만년 전 제주도에 살면서 발자국을 남겼던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동물들은 고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본보 7일자 A1·30면 참조).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떤 환경에서 살았을까. 장구한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에 그 모습을 처음 드러낸 이들 화석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면서 앞으로의 연구과제 등을 짚어본다.

▽발자국의 주인은 한국인의 직접 조상일까=발자국의 주인이 현재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 이인규 서울대 명예교수(해양동물학)는 “5만년 전 인류는 고고학적으로 볼 때 현대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발자국의 주인이 5만년 전 인류라는 사실은 지층 연대측정에 따른 것.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현대 한국인의 직접적 조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지만, 한국인의 조상은 신석기시대 이후의 인류로 추정된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고고인류학)는 “현생 인류의 조상은 3만∼4만년 전 인류라는 것이 통상적 학설”이라고 말했다.

▽발자국의 주인은 어디에서 왔을까=5만년 전 제주도는 섬이 아니라 대륙의 일부였다는 학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서해가 바다가 아니어서 중국대륙과 한반도가 모두 육지로 연결됐으며 제주도는 그 대륙의 남쪽 지역에 속해 있었다는 것. 이 교수는 “현재로서는 제주도 구석기인들의 유입경로를 알 수 없으나 당시 아프리카, 중동, 중국 남부를 거쳐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지금까지 학계에서 지배적이었던 한반도 구석기인의 북방유입설에 남방유입설이 추가될 수도 있다.

배 교수는 “일본 열도의 구석기시대가 4만년에서 8만년 전에 걸쳐 있다는 학설을 바탕으로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 주인의 이동을 연구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발자국만으로 구석기인들이 남방에서 왔다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화석 발견 장소는 어떤 환경이었을까=제주도가 육지였다면 이번에 화석이 발견된 곳도 당시에는 바닷가가 아니라 민물이 흐르던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양승영 경북대 교수(고생물학)는 “동물 발자국이나 식물 화석이 대거 발견된 점으로 미뤄볼 때 먹을 것이 풍부한 호숫가나 숲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석을 처음 발견한 한국교원대 김정율 교수는 “발자국 보폭으로 볼 때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었고, 배열 상태로 볼 때 먹이를 구하던 것이 아닌가 추정될 정도로 뚜렷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대해서는 동식물 화석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과제들=학자들은 현장보존과 공동연구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문화재청은 화석발견 지역을 천연기념물로 가지정하는 등 긴급 보존조치를 취해놓았다. 배 교수는 “문화재청 주관으로 고고학뿐 아니라 지질학, 동식물학 등 관련 학문 전공자들이 함께 현장을 조사하고 세미나를 갖는 등 공동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