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중순경.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양인석(梁仁錫) 사정비서관은 막 출근한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을 찾아갔다.
“며칠 전 저녁에 ○○○씨를 만났습니까.”(양)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문)
“그 사람한테서 △△△을 알아봐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까.”(양)
“만났지만 청탁은 받지 않았습니다.”(문)
“수석님이 청탁을 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그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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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문 수석은 저녁 약속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면 꼭 양 비서관에게 미리 귀띔했다. 양 비서관 역시 외부 사람을 만나면 문 수석에게 먼저 보고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서로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자는 뜻에서였다. 청와대에선 “‘양비’(양 비서관)한테 걸리면 ‘문변’(변호사 출신인 문 수석)도 간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그런 양 비서관이 사석에서 “문 수석이나 이호철(李鎬喆) 민정비서관처럼 깨끗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양 비서관이 2일 갑자기 사표를 던졌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 민경찬씨의 653억원 모집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던 중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양 비서관의 소관인 경찰청 특수수사과로 넘어갔던 탓에 항간에서는 사표 제출이 민씨 조사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았다.
양 비서관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옷 로비’ 사건의 특별검사보로 활동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찍었다. 지난해 이맘때 문 수석에게서 “청와대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이회창을 찍은 사람이 어떻게…”라며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새 정부의 인재 풀인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는 ‘그를 기용해선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가 거셌지만 문 수석은 “능력이 중요하지 누구를 찍었든 무슨 상관이냐”며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그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양 비서관의 사표 제출 배경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은 “민정수석실 생활을 갑갑하게 여기는 듯했다. 검찰에서 큰일이 터져도 ‘별로 안 바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검찰의 정치권 사정 역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문 수석은 “연차 휴가로 처리하고 양 비서관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전하라”고 최근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문 수석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양 비서관이 청와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