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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칠레 FTA 비준 세번째 무산]“못믿을 한국” 국제不信 자초

입력 | 2004-02-10 01:42:00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의 표결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면서 국회 본회의 정회가 선언되자 고건 국무총리(가운데)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국회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9일 국회에서 다시 무산됨에 따라 한-칠레 FTA가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칠레가 지난달 상원에서 비준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상황에서 이번 비준안 처리가 또 무산됨으로써 한국의 국가신인도 하락이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기업의 수출에도 큰 악영향이 예상된다.

한-칠레 FTA 비준안 처리와 함께 ‘쌀 시장 개방 재협상’ 등 산적한 통상 현안을 처리하려면 정책 조율과 국민 여론의 수렴 체계를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해 국익을 무시한 일부 의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 국제무대 외톨이=세계무역기구(WTO) 146개 회원국 가운데 현재까지 한 건의 FTA도 발효시키지 못한 나라는 한국과 몽골 2개국에 불과하다.

무역의존도(국민총생산 대비 수출입 비율)가 70%에 이르는 한국이 국제 통상의 큰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는 셈이다.

한-칠레 FTA 비준 지연은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일본, 싱가포르, 멕시코 등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병섭(金炳燮) 통상교섭본부 다자통상과장은 “칠레와의 FTA를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FTA 추진 능력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칠레 상원은 지난달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며 국내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비준동의안을 곧 통과시키겠다며 칠레 당국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FTA 비준동의안 처리 실패로 국가간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신뢰 추락을 자초했다.

최낙균(崔洛均)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투자실장은 “한국이 첫 FTA인 한-칠레 FTA에 발목이 잡혀 국제 통상무대에서 ‘외톨이’가 될 위기에 놓였다”고 우려했다.

국회는 16일 비준동의안 처리를 네 번째 시도하기로 했으나 4월 총선을 앞두고 ‘농민 표’를 의식한 일부 정치권의 반발 탓에 비준안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출 경쟁력 약화=FTA 체결국끼리 특혜를 주는 무역은 2000년 기준으로 세계 무역에서 65%를 차지했다. FTA 무대에서 소외되면 경쟁국에 비해 부담을 안고 수출해야 한다.

한국 상품은 이미 한-칠레 FTA 지연으로 칠레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됐다.

한국 자동차의 칠레시장 점유율은 2002년 20.5%에서 작년 상반기 18.8%로 떨어졌다. 휴대전화 점유율도 10.7%에서 7%대로 하락했다. 또 지난해 직물과 무선통신기기의 대(對) 칠레 수출은 2002년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다.

유럽연합(EU) 등 지난해 칠레와의 FTA를 발효시킨 나라는 관세 등에서 특혜를 누리며 칠레에서 한국의 입지를 위축시키고 있다.

한-칠레 FTA 지연은 중남미 시장 전체에 대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칠레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4개국으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 FTA를 발효시켜 사실상 거대한 중남미 경제블록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무역수지 흑자액의 절반가량을 중남미 시장에서 얻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세계적으로 11건의 FTA가 체결됐고 올해 협상이 진행 중인 FTA는 33건에 이른다.

산업자원부는 각국이 추진 중인 FTA를 발효시키면 한국은 적어도 연간 6억달러 이상의 수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한-칠레 FTA 국회 비준이 정치권에 발목을 잡혀 세 차례나 무산되자 “이대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과 일부 농민단체는 현실 왜곡으로 국가 위기를 외면했고 정부는 ‘강경한 소수’에 밀려 정책 추진에 한계를 드러냈다.

곽노성(郭魯成)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국익 차원에서 통상 현안에 관해 서로 다른 주장을 조율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민에게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교육과 홍보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선거에서의 당선만 의식해 국익을 외면한 정치인에 대해서는 정말 낙선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여론을 수렴할 최고 권력자의 리더십 △‘통상절차법’ 조기 제정 △대외 개방에 관한 대국민 홍보기획단 구성 △공무원 인사 및 직제 개편을 통한 부처간 이견 조율 등을 주문하고 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올해 한국의 주요 통상 현안

현안

진행상황

걸림돌

협상 의미

한-칠레 FTA

한국의 국회 비준 또 실패

농촌 출신 국회의원 및 농민 반대

한국의 첫 FTA, 남미시장 교두보

한-일 FTA

2월 정부간 협상 시작

제조업계 피해 우려

한중일 FTA로 가는 징검다리, 한국 수출 증가 요인

한-싱가포르 FTA

정부간 협상 중

싱가포르를 통한 제3국 제품의 우회 수입

금융 및 서비스 경쟁력 강화

쌀 시장 개방 재협상

한국, WTO에 재협상안 통보

농민 반대, 개방 수준에 대한 기준 없음

UR협상 이행, 교역국과 추가 마찰 방지

한미 투자협정(BIT)

협상 잠정중단

미국의 스크린쿼터 요구와 이에 대한 영화업계 반대

미국의 투자 유치와 장기적인 미국 수출시장 확대

WTO

도하개발어젠다

작년 칸쿤 각료회의 결렬, 미국 등 협상 재추진

개발도상국들의 반대

한국의 수출시장 확대, 쌀 개방 기준 마련

한미

지적재산권 분쟁

미국, 한국을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

미국의 지나친 요구와 한국의 일반화된 복제 문화

한미 분쟁 요인 제거, 국제기준 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