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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1860년대 美남부 배경 ‘콜드 마운틴’

입력 | 2004-02-10 18:47:00

주드 로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 ‘콜드 마운틴’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사진제공 BVI코리아


배우를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뜨거운’ 배우와 ‘차가운’ 배우. ‘뜨거운’ 타입의 배우가 에너지를 발산하며 상대에게 다가간다면 ‘차가운’ 타입의 배우는 싸늘한 매력을 흘리며 상대를 끌어당긴다.

영화 ‘콜드 마운틴’에는 세 명의 걸출한 배우가 등장한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르네 젤위거. 이들이 각기 어떤 ‘체온’을 가진 배우에 속하는 지 살펴보는 것이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가 된다. 캐스팅은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다.

1860년대 미국 남부의 시골 마을 콜드 마운틴. 이지적인 처녀 아이다(니콜 키드먼)와 순박한 청년 인만(주드 로)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 인만은 남북전쟁 때 징집되고, 두 사람은 어설픈 첫 키스만 나눈 채 헤어진다. 남군 병사인 인만은 중상을 입고 입원하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다를 만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한다. 한편 고향에 있는 아이다는 생사조차 알 길이 없는 인만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다. 흑심을 품은 의용대장은 그런 아이다에게 접근한다. 그 때 억척스런 산골처녀 루비(르네 젤위거)가 아이다 앞에 나타난다.

제목이 벌써 말한다. ‘콜드 마운틴’은 ‘뜨겁기’보다는 ‘차가운’ 영화다. 이 영화는 운명을 내세운 우연과 반전으로 관객을 선동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되고 평면적인 듯한 화면으로 전쟁이 낳은, 작지만 아름다운 비극을 끄집어낸다. 이 영화가 관객이 발을 동동 구를 법한 절박한 러브 스토리로 치닫지 않고 서사시처럼 ‘흘러가는’ 것은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오류라기보다는 선택으로 보인다. 그는 영화 ‘리플리’를 통해 서스펜스 스릴러조차 수채화처럼 그려내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니콜 키드먼과 르네 젤위거는 동성(同性)이지만 찰떡궁합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온 아이다와 말머리마다 “첫 번째는, 두 번째는…” 하면서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억척여성 루비는 대안 부부의 모습을 띈다. ‘차가운’ 니콜 키드먼과 ‘뜨거운’ 르네 젤위거는 두 배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콧등에 한껏 힘을 주고 무식한 체 말하는 르네 젤위거의 연기는 비록 ‘영화적’이지만, 예쁜 척하는 니콜 키드먼의 대척점에 서 있기를 자처한 것이기에 더 빛난다.

문제는 주드 로와 니콜 키드먼에 있다. 둘 다 외로운 고양이 같은 이미지를 가진 ‘차가운’ 배우들이다. 이들은 주로 ‘사랑하기’보다는 ‘사랑받거나’ 남을 유혹하는 쪽이다. 도회적이고 이지적이며 섹시한 두 배우는 왠지 모를 척력으로 서로를 밀쳐낸다.

감독도 이 점을 간파한 것 같다. 영화는 두 배우를 시종 떨어트려 놓는다. 이 영화가 전형적인 전쟁-러브 스토리의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두 배우를 각각 주연으로 하는 독립된 두 편의 영화를 엮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바로 두 배우간에 형성되는 ‘느슨한 친밀성’ 때문이다.

그러나 옷을 벗은 두 배우는 역시 빛난다. 단 한번 나오는 이들의 베드신은 이들이 왜 크게 노출하지 않아도 관객의 심장을 터지게 만드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게 해준다. 얼굴의 이미지와 몸의 이미지가 일치하는 이들은 신체의 특정부위가 갖는 개별적 이미지를 뛰어 넘는 몸의 곡선을 가진 드문 경우다. 차가우면서도 그래서 매력적인 시골마을 ‘콜드 마운틴’의 산세(山勢)처럼 말이다.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