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 무역업체가 국제조약을 통해 수출 통제 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전략물자’를 불법으로 리비아에 수출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 수출액의 40%를 차지하는 전략물자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자원부는 11일 무역업체인 D사가 정부 허가 없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쓰일 수 있는 ‘밸런싱 머신’ 4대를 리비아에 수출한 혐의가 포착돼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략물자 불법 수출 혐의가 인정되면 국내법상 5년 이하의 징역과 1년 이하의 전략 물자 수출입 금지 처분은 물론 주요 국가와의 무역거래가 3년간 제한돼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하다.
산자부에 따르면 이 기계는 원심분리기 등 회전체의 균형 정도를 측정하는 장비로 지난해 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리비아 사찰단이 적발해 외교경로를 통하여 한국 정부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한국 업체가 전략물자 불법 수출로 적발되기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전략물자 수출 통제는 냉전시대에 공산권 국가를 대상으로 서방 국가들이 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무기로 전용(轉用)될 수 있는 품목의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서다.
수출통제는 1994년 COCOM 폐지 뒤 핵공급그룹(NSG),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바세나르협정(WA) 등으로 확산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도 관련 협약에 대부분 가입해 있다.
과거 일본의 도시바가 수출한 공작기계류가 옛 소련의 저소음잠수함용 스크루 생산에 쓰여 당시 통상산업상과 도시바 회장이 사임한 바 있다. 또 일부 해외 기업은 미국의 제재로 파산한 전례가 있어 전략물자 불법 수출기업으로 낙인이 찍히면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산자부는 이달 중 직제개편을 통해 전략물자관리과를 신설하고 상반기에 민간단체인 전략물자관리센터를 출범토록 할 방침이다.
또 전략물자로 사용될 수 있는 품목을 수출할 때 관련 기관의 허가를 받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현재 전략물자 대상은 1993종이며 지난해 수출액은 720억달러로 전체의 40%에 이른다. 관련 업체는 약 3만3500개사로 알려졌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