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金振杓) 전 경제부총리가 11일 ‘경제팀 수장(首長)’의 자리를 이헌재(李憲宰) 신임 경제부총리에게 넘겨주고 본격적으로 총선 준비에 나섰다.
김 전 부총리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취임 당시 북핵 문제, 이라크 전쟁, SK글로벌 사태, 신용불량자 문제 등 소위 7중고에 시달렸지만 단합된 힘과 열정으로 하나씩 하나씩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정부 첫해를 이끈 ‘김진표 경제팀’의 성적표는 자평(自評)과는 달리 그리 좋지 않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낙제점’이란 혹평도 적지 않다.
경제성장률은 2002년 6.3%에서 지난해에는 2.9%(추정)로 낮아졌다. 김 전 부총리는 3%는 가능하다고 공언했지만 지금으로선 어려워 보인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3.1%에서 3.4%로 늘었으며 특히 청년실업률은 작년 평균 7.7%에 이르러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신용불량자도 2002년 12월 말 263만명에서 1년 뒤에는 372만명으로 41%나 급증했다.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4.6%나 줄어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으며 내수도 5.6%(소비재 출하 기준)나 감소했다.
유일하게 수출만 호조를 보였지만 무리한 환율 방어와 세계 경기의 회복세에 기인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한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가 11일 이임식을 마치고 정부과천청사를 떠났다.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김 전 부총리는 이날 활짝 웃으면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올리는 ‘여유’를 보였다. -전영한기자
수치로 나타난 성적표 이외의 공과(功過)를 봐도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우선 경제부총리로서 관련 부처의 정책을 종합 조정해야 하는데도 리더십 부재(不在)의 상태가 재직 기간 내내 이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담뱃값 인상을 놓고 보건복지부와의 힘겨루기에서 어이없게 밀렸는가 하면 고교 평준화와 관련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질책’까지 받아야 했다.
위기에 빠진 경제를 뒤로 하고 정치판에 나선 행보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김 전 부총리는 그동안 “경제에만 전념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지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공직자의 사퇴시한을 나흘 앞두고 퇴임했다.
한편 이날 그는 재경부 공무원직장협의회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으면서 각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앵글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예비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내비쳤다.
또 “정치권과 국민이 균형재정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지 못했다”고 말해 경기 침체의 책임을 주변의 탓으로 돌리는 ‘노련함’도 과시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