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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앤젤리나 졸리 보이트. 영화를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명배우 존 보이트의 딸이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졸리는 할리우드의 숱한 2세 스타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다. 아버지의 후광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일찍 헤어진 탓도 있지만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졸리가 특이한 건 그것만이 아니다. 졸리는 할리우드의 숱한 미녀배우들의 틈을 뚫고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이상하게도 왠지 다듬어지지 않은, 짙은 위험성을 지닌 독특한 여배우인 것처럼 보인다. 그건 20년 가까이 연상인 빌리 밥 손턴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엽기적 행동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졸리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로움, 섹시함, 강인함, 대담함 때문이다. 동시대 배우 중에서 이처럼 복합적인 이미지의 조합을 가진 여배우는 찾기 힘들 정도다.
두툼한 입술 탓에 섹시하고 뇌쇄적 용모를 뽐내는 졸리는 자유분방한 모습 그대로 맡은 배역도 끝에서 끝, 정적인 연기에서 블록버스터 액션 연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해 왔다. 초기작 ‘해커스’에서부터 레즈비언 모델을 열연한 ‘지아’ ‘처음 만나는 자유’ ’본 컬렉터’ 등 필모그래피(출연작 목록)도 화려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졸리가 대중적 스타로 발돋움한 건 ‘툼 레이더’ 시리즈부터다.
속편 어딘가에 등장하는 꽉 끼는 스킨스쿠버 슈트를 입은 졸리의 모습은 세계의 중년 관객들로 하여금 무조건 영화를 보러 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좀 더 진중하게 바라보면 여성 액션스타로서의 졸리는 선배세대와 현격하게 차별된다. 예컨대 여전사 형이라고 하면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나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처럼 중성적인 근육질의 투사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유형의 여전사는 졸리처럼 섹시함과 지적인 이미지, 도발성과 대담함을 두루 갖춘 모습으로 등장한다. 80, 90년대의 페미니즘이 투사적 여전사형을 필요로 했다면, 2000년대의 여전사는 여성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강인함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졸리는 신작 ‘머나먼 사랑’에서 또 한번의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이번에는 투사도 아니고 섹스 심벌도 아닌 순애보적 사랑 연기를 펼친다. 그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세계 분쟁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는 의지의 영국인 의사. 졸리는 위기에 빠진 연인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든다. 그래서 원제도 ‘Beyond Borders’, 곧 ‘국경을 넘어서’. 순애보의 사랑 연기를 펼친다 해도 졸리에게선 여전히 야생의 매력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그가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배우로 남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 탓일 것이다.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