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에서 열린 친구 아들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 4년 만에 맡은 주례인지라 행여 식에 늦을까봐 하루 일찍 상경해 준비했다. 주례사도 신경 써서 준비했다.
먼저 신랑이 입장을 마치고 뒤이어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데 갑자기 신랑이 쫓아나가 넙죽 큰절을 했다.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주례사는 짧게 할수록 좋다는 은근한 ‘압력’을 받은 터라 거두절미해 말하다 보니 주례사가 무슨 뜻인지 주례인 나 자신도 모를 정도였다. 곧이어 3단 케이크를 실은 손수레가 도착하고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신랑 신부가 케이크를 잘랐다. “예식 도중에 케이크 커팅이라니…” 하는 생각을 하며 멀거니 구경했다.
신랑 신부가 내빈에게 인사하는 순서. 한데 목례가 아니라 큰절을 하라는 것이었다. 연미복을 입은 신랑이 큰절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긴 드레스를 입고 남자처럼 큰절을 하는 신부의 모습은 자신도 고역이었겠지만 보는 이도 괴로웠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회자는 느닷없이 신랑의 체력을 시험해야 한다며 ‘팔굽혀 펴기’를 몇 차례 시키더니 장모를 등에 업고 장내를 한바퀴 돌라고 했다. 장내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동안 사회자는 계속해서 야한 농담을 해대 예식은 완전히 코미디가 됐다.
결혼식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엄숙한 혼인의 의미는 간데없고 코미디만 남은 이런 식의 국적불명 뒤죽박죽 예식이 일반화됐다고 하니, 최근의 이혼율 급증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이 끝났지만 명색이 주례인데, 피로연장으로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동창 친구가 다가와 옛날처럼 주례 체면 차리면 끼니 굶기 십상이라고 귀띔했다. 귀갓길, 입에서는 “다시는 이따위 코미디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말이 맴돌았다.
백종현 / 농장 경영·충북 괴산군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