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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박보영/이혼법정 남녀차별은 없다

입력 | 2004-02-12 19:30:00


며칠 전 동아일보에 법원이 가부장적인 태도로 이혼소송에서 여성을 차별한다는 취지의 모 여성변호사 칼럼이 게재됐다. 물론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판단해야 하는 직무의 속성상, 결과에 불만족스러운 당사자에게서 억울한 비난을 받는 것은 어쩌면 법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8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최근 법원을 떠난 필자로서는 그동안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온 법관들의 노력이 자칫 왜곡될 수 있다는 안타까움에 과감히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함에 따라 부부의 이혼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고 그 결과 법원에 접수되는 이혼소송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혼소송에서 법원은 상담과 조정을 통해 이들을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는 데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혼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법원은 이혼의 결과 부부 쌍방이 실질적으로 평등해지도록 노력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낯선 이국땅에서 아이 양육과 남편 뒷바라지에 바쁜 아내 또는 직장생활에 쫓기는 아내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것을 남편의 책임으로 인정했다. 전업주부에 대한 재산분할비율을 높였으며, 사전처분과 이행명령 등을 적극 활용해 이혼소송 중에 생활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후견 역할도 했다.

동아일보 칼럼의 필자는 실제 있었던 이혼소송에서 법원이 평소 남편이 지급하던 생활비의 일부만 아내에게 지급하라고 한 것은 남편의 보복을 정당화한 것이고, 시누이에게 순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자료를 감액한 것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라는 취지로 법원을 비판했다.

그러나 집을 나와 혼자 사는 아내에게 정상적인 혼인상태에서 가족 전부의 생활비로 지급되던 액수만큼의 생활비를 지급하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또 아내가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순종하지 않고 집안 대소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면서 남편이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법원이 남편 주장의 진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그런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아내가 이혼당할 정도로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남편의 청구를 기각하는 대신 아내의 반소를 받아들여 이혼을 허용했던 것이다. 시누이에 대한 순종 여부의 문제로 위자료를 감액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법원이 그 점 때문에 위자료를 감액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판결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원의 사명은 공정한 재판이고, 그 공정의 잣대에 여성과 남성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우리의 가족제도, 그리고 사회 및 경제구조가 아직 여성에게 불리하다 보니 이혼 이후 실질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소송에서는 여성을 더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체적인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이혼소송에서 무조건 유리한 결론을 요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박보영 변호사·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 이 글은 본보 6일자 금요칼럼 ‘시누이에 순종 안한 罪’에 대한 반론입니다.